[가비아: 김국현 컬럼] 중소, 중견기업이 빅데이터 트렌드로부터 챙겨야 할 것들.

인터넷 인프라 솔루션 기업 가비아와 함께 하고 있는 컬럼, 여기에도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소, 중견기업이 빅데이터 트렌드로부터 챙겨야 할 것들.

 

빅데이터란 단어가 꽤나 유행하고 있다.
이 단어만 붙으면 마치 미래를 바로 예측해 버리고, 고객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 그래서 그런지 특히나 경영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귀한 단어로 등극했다.

 

그렇지만 빅데이터를 학습하면 학습할수록,
이 물건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 생각 또한 들고 만다. 등장하는
사례들은 보통 수십
, 수백 대의 서버를 분산 연결하고, 이 위에 숙련된
개발자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프로그래밍을 능수능란하게 해서 만들어진 것
. 하둡이니 맵리듀스니 이해하기 힘든
기술만 잔뜩 등장한다
. 이렇게 인력과 장비 동원이 가능한 곳은 모두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초거대 기업들 정도다.
아직 여력이 없는 작은 기업 종사자라면, 빅데이터의 사례들과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져
약간 우울해질 수도 있다
.

 

그런데 별로 우울해 할 필요가 없다.
빅데이터의은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가
숨쉴틈 없이 쏟아져 들어와 거대하게 쌓이는 이미지이지만
, 사실 이런 초거대 데이터 없이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빅데이터가 빅데이터의 트렌드를 만들 정도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오히려보다는데이터의 힘이다. 데이터에 근거한 경영 판단 및 사업
전략을 취했더니 성공할 수 있었다
. 이것이 본질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오히려 지금 중요한 것은 작은 데이터라도 소중히 여기는 전략이다
.

 

물론 모든 데이터를 풍족하게 모으고
모아 전부다 전수
(全數)조사할 수 있는 잉여의 시대에 접어든 것은 충격적이지만,
온 세상 모든 비즈니스에게 그 잉여의 시대가 찾아온 것은 아니다. 일반 기업에게는
도대체 무엇이 전수조사일까
? 인터넷 기업이야 모든 데이터 트래픽을 다 잡아두겠다는 호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 기업에게는 고객의 움직임을 전부다 모으겠다는 욕망은 곧 비용이 된다. 오히려
적당한 샘플로 적절히 취한 데이터만으로도 통계적으로 충분히 유의미할 수도 있다
. 지금까지는 아예 이러한 데이터에
근거한 기획이 없었던 것이 문제이지
, 데이터가 작어서 문제인 것은 아니다. 또한 이미 기업 내외부에는은 아니라도 적당한 데이터는
얼마든지 있다
. 이 데이터에서 해석해야 할 지표를 찾는 것, 그러니까
데이터중 무엇이 어떤 관계하에서 기업의 이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지
, 이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
.

 

즉 많은 기업에게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하둡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 이미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엑셀로 회귀분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엑셀은 이미 파워 피봇 등 다양한 데이터원으로부터 대량 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데이터 분석 기능도 충분하니, 내친김에
진짜 빅데이터의 세계에 뛰어들 수도 있다
. 빅데이터 트렌드 덕분에 우리에게 익숙한 도구들은 더욱 더 좋아지고
있다
.

 

빅데이터 트렌드는 이와 같이 그 성공
사례로부터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주고 있는데
, 이 중에서 각자의 실상에 맞는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 특히 NoSQL 솔루션 정도는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하둡을 쓰지 않고 간편히 설치할 수 있는 기술들도 있는데, 기존 데이터베이스는 처리하기
힘들거나 적합하지 않은 다양한 안건을 색다른 각도에서 공략할 수 있다
. 게다가 대부분 오픈소스라 상용 데이터베이스처럼
라이센스비가 들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 테이블 설계도 하지 않고, API로 간단히 조작하는 가벼운 업무를 만들 때, 또는 실시간으로 대규모 처리가 일어날 때,
중소 중견 기업도 의외로 쓸만한 것이 NoSQL 제품들이다. 실제로 대기업들이 빅데이터 기술을 확보하는 이유 중 하나로, 상용 데이터베이스 종속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숨은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다
.

 

또한 빅데이터 사례 중에는 외부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 고객 니즈의 360도 전체상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회사 이외의 데이터도 적극 활용하자는 것인데
, 공공 데이터 등 작지만 의미 있는 데이터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큰 데이터가 아니라, 작아도 유의미한 데이터들이라고 생각하면 수집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아진다
.

 

오늘도 빅데이터 트렌드는 수많은 데이터와
기술들을 쏟아내고 있다
. ①이미 여러분이 쓰고 있는 도구, ②비교적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 그리고아직 여러분이 신경 쓰지
않았던 데이터가
통계학에 기반한 기획과 만난다면, 여느 빅데이터 사례 부럽지 않은 여러분만의 데이터 중심 경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경영도
인생도 제약 조건하에서의 취사선택이지 않은가
, 빅데이터 유행은 이를 다시금 알려주고 있다.

컨텍스트의 시대

컨텍스트의 시대. 

생각해 보면, 웹이란 결국은 컨텐트의 시대였다. 
그 증명은 거대한 컨텐트 잡지로 변한 네이버였다. 거대한 게시판으로 변한 페이스북이었다. 

Content Is King – Bill Gates (1/3/1996)
Content Is King by Bill Gates [www.craigbailey.net]

그가 이 말을 한 후로, 거의 20년이 지났다. King도 바뀌는 것이 당연한 세월이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IT 기술 블로거 로버트 스코블과 소셜 미디어의 파워를 예측한 컨설턴트 셸 이스라엘이 다시 만났다. 그들이 들려주는 다가올 미래, 아니 이미 우리 앞에 닥친 ‘컨텍스트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인간의 삶을 바꿀 다섯 요소에 대한 통찰, 나보나 나를 더 잘 아는 데이터와 센서가 지배하는 시대-컨텍스트의 시대를 이 책을 통해 먼저 경험할 수 있…
컨텍스트의 시대 [blog.yes24.com]

모바일이 스마트가 이 시대의 새로운 키워드가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웹을 만든 온라인과 인터넷의 정신은 현실마저 바꾸고 있다. 
컨텍스트란 바로 그 접점의 다른 이름이다. 
나를 둘러싼, 내가 놓인 처지를 이해하고 이를 계산하여 최적의 컨텐츠를 현실에서도 제공한다. 
눈치 빠른 서비스는 알아서 모든 것을 처리한다. 촌스럽게 검색질의를 받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동차도 알아서 운전하겠다 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끊임없이 찬미하고 있는 구글은 앞으로 내가 무엇을 묻지 않아도 결론을 말해주는 것을 꿈꾸고 있다. 대신 그 조건으로 우리의 일상을 다 흡수할 것이고, 그 흡수 도구도 몸에 장착하기를 원한다. 웨어러블은 그 징조다. 

이 세상에는 늘 컨텍스트가 있었다. 대화의 맥락에, 스토리텔링의 구조에, 그리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부여되기도 했다. 
모든 사물에 “북유럽풍”을 붙여 보자, 그러면 갑자기 이 사물은 새로운 컨텍스트를 갖고, 그 자체도 달리 보이는 착각을 느낀다.
북유럽풍의 행주, 북유럽풍의 셔츠, 북유럽풍의 자전거… 
이것이 컨텍스트의 마법이다. 마케팅이란 결국, 이러한 환상 유지 장치일 뿐이다. 

그런데 앞으로의 기업은 나의 컨텍스트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원하는 컨텍스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격차를 계산해낼 수 있다. 사람들이 이런 흐름에 행여 불편해 하는 것은 그렇게 공개된 격차와, 그 격차에 매겨질 가격이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멋진 신세계가 찾아 오고 있다. 

슬픔을 가슴에 묻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이유

벌써 3년전이 된 3.11 일본 대지진. 그 후 한 일본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절망적 사고는 큰 아픔이지만 어쩌면 이 나라의 젊은 세대를 깨우는 일을 하리라고. 
어른들의 기득권에 맡겨 둔 국가, 그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금, 세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우리의 4월이 그 3월에 비슷해 보였다. 
행정과 정치는 온갖 변명 속에 속수무책 우왕좌왕했으며, 
면피를 위한 기자회견부터 무의미한 현장방문까지 ‘퍼포먼스’에 매진하며 
어떻게 하면 선거민들에게 자신의 입장이 그럴듯하게 보일지 분주했다. 

대자연의 재해과 테러와 같은 가공할 두려움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지만
평온에 감춰진 기득권의 민낯을 드러내게 한다. 
사람들의 무력감과 상실감은 그 져버린 신뢰와 실망의 크기가 된다. 
일본도 미국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의 4월은  …
재해도 테러도 아닌, 너무 저질이고 너무 찌질해서 너무도 끔찍했다. 

진원지와 적은 어디인가…, 드러난 이들은 수가 뻔히 보이는 둔갑만 계속 한다. 
너무나도 많은 공범이 있으며, 최종보스라고 생각했던 이 뒤에는 또 다른 배후가 있다. 
양파껍질은 끝도 없이 떨어져 나간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태연자약 벌어지고 그것이 당연시 되어 온 세상, 그런 곳이 실재하고 있었던 것에 소름이 돋는다. 
그 곳은 대한민국.
정부든, 정당이든, 회사든, 종교든, 심지어 배 한척이든 한줌의 조직이라도 그 키를 잡은 인간군상들의 적나라하게 드러난 본성을 목도한 이상,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슬픔을 가슴에 묻고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드러나지 않은 곳은, 드러날 리 없는 곳은 도대체 어떤 아수라일까. 왜 늘 사람이 죽어야만 그리고 국민의 공분이 있어야만, 무언가 겨우 밝혀지는 것인가.

절대로 리더가 되서는 안되는 수준의 사람들이 리더를 하고 있고,
이들의 완장과 자리와 이권을 보전하기 위해 짬짜미가 횡행하고,
그 조직의 소속원들은 
영혼을 잃은 채 
“에이, 이번에도 하던 대로 하고, 다음부터 원칙대로 합시다.”
“역시… 그럴까요?”
“그럼 당연하지, 왜 이래 사람이 순진해가지고, 샌님처럼.”
“하지만…”
“그럼, 그게 관행이야. 그리고 그래야지 조직도 살고 윗선에도 무리가 안가. 다 그렇게 되어 있는거야. “

사회 곳곳 온통 세월호로 가득한 대한민국. 어느새 그 난파선의 공범 승무원이 되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국민들은 가족과 사회와 다음 세대라는 승객들이 눈에 밟혀, 
좀처럼 슬픔을 가슴에 묻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것이다. 

오늘의 아픔이 이 난파선에 울리는 알람이 되어야만…
그것이 이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일텐데…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 일본인이 한 말을 깨닫고 있다. 

[김국현의 논점] 왜 공인인증서는 사라지지 않는가? – 공인인증서가 상징하는 것

공인인증서는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zetlos Sean Shin @zetlos

공인인증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규제를 푼다고. 안 믿슴다.

공인인증서가 쓰기 불편하다거나 혹은 오히려 보안에 취약했다는 논리도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명제란 실제 다른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의외로 절대적 입증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입증의 권한은 전문가에 위임되고 그 전문가는 정부가 선정한다. 이른바 어용(御用)의 구조다. 허나 실제로 ‘더럽고 귀찮은’ 국지적 특이성 덕에 해킹을 안한 글로벌 해커가 한 명이라도 존재했다면, 이 제도는 그 기능을 다 했다 주장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논쟁의 평행선은 10년 넘게 지속중이다.

그런데 이런 예를 들어 보자. 집집마다 300kg의 강철문을 달기로 했다고 하자. 목재는 언감생심, 알루미늄도 안되고, 300kg보다 모자라서도 안된다. 모든 집에는 300kg의 강철문을! 실제로 300kg의 위압감은 도둑을 귀찮게 했을 수도 있다. “하하하, 어느 누구도 현관으로 들어 올 수는 없었어!” 라며 철강회사와 창호회사와 규제당국은 기뻐했지만, 이미 도둑들은 다른 창문으로 넘어 다니고 있었고, 300kg의 무게 덕에 건물의 구조는 뒤틀리고 있었으며, 문을 달기 부담되어 신축건물도 생기지 않게 되었다. 미장원을 개업하려 했더니 300kg 철문 설치공문이 온다. 당국은 300kg의 산업이 일군 철생산량만 홍보하기 바쁘고, 그 덕에 사라진 기회의 가치와 분산된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취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아무도 열고 싶지 않은 300kg의 철문이 달린 오래된 유령 건물만이 남아 있게 된다.
  
모든 효과에는 비용이 있다. 그러나 어떤 효과만이 절대적 가치로 선언되고, 그 비용은 계산되지 않는다. 이 부조리가 한국 사회에서 수시로 목격되고 있다. 공인인증서 문제는 사실 이 부조리의 플랫폼, 관제담합의 상징인 것이다.

각 중앙부처는 관할하에 산하단체를 두고, 이들을 사실상 독점 하청 상태로 운영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시 관변의 민간 업체가 하도급으로 배치되며 다시 이를 굳히는 아교풀처럼 어용 교수들이 논리를 강화해준다. 그리고 이 굳어 버린 담합의 구조는 관료 자신의 자리를 지켜줄 보루이며 후일 낙하산이 착륙할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공인인증서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비용대 효과를 도외시한 규제로 300kg 철문을 사회 곳곳에 찍어내는 구태의연이 세금과 공복에 의해 온존하며, 새로운 혁신은 물론 기존의 시민 생활을 방해하고 있지만 이를 10년 이상 자신있게 방치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관치사회주의적 성향에 있는 것이다. 

[김국현의 논점] 왜 우리는 오늘도 야근을 하는가?

한국은 그 낮은 생산성과 긴 야근으로 유명하다. 

OECD 평균을 420시간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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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근로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1년 기준 29.75달러로 OECD 평균(44.56달러)의 65.5% 수준에 불과

왜 그런데 우리는 오늘도 또 야근을 하는가? 물론 어느나라보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전후로 하여 쾌적하고 느슨한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고, 또 정직원의 야근수당이 탐나서 엉덩이가 무거워졌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는 정말 바빠서 야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짜로 밤이 되도 일이란 것이 끝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나의 일이란 끝나지 않는 것이기에 적당히 끊고 가는 수 밖에 없고, 집에 와서도 적당히 잘라낸 일이 마음에 걸린다. 이 찝찝함이 심해지면 주말에도 출근하게 된다.
때로는 자발적으로.
그렇게 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퇴사하는 날까지. 
 
그 주범은 무엇일까?

기업의 가족 주의적 문화는 손쉬운 용의자다. 원래 가족이란 서로에 대해 무한의 책임을 갖는다. 쩔쩔매고 있는 동생이 있다면 형이 나서는 것이고, 형은 기꺼이 동생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기도 한다. 한국 대기업의 사훈에 대개 가족을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등장하는 이유이다.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며, 가족이 나를 버리는 일이란 것은 차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혈연이 아닌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에 대한 충성을 결의할 무언가를 서로 확인해야만 한다. 

단체기합, 철야행군, 극기훈련 등은 기본소양 교육중의 하나다.

·

최근 각종 금융사고에서 한 발 빗껴 있는 신한은행은 신한만의 조직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기업 문화는 호모소셜한 집단을 형성하게 되고, 급기야 JD(Job Description)를 필요로 하지 않는 채용 문화, 예컨대 공채라는 풍토를 만들어 낸다. 내가 무슨 일을 하러 이 회사에 들어 가는지 알지 못하고 들어 가는 것이며, 사측도 일단 가족의 자격이 되는 이들을 받아 들이고, 이들이 무슨 인재로 커 갈지 두근두근 모르는 상태가 된다. 이 미묘한 의형제적 관계의 긴장감은 ‘자기 일 끝났다고 집에 가는’ 일을 본질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 회사에 들어 올 때의 계약이란, JD에 의한 쌍무적 계약이라기보다도 “가족적 무한 책임”하에 소속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구에도 스타트업이나 ‘파트너’ 등 이와 같은 ‘가족적 무한 책임’과 ‘주인 의식’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진짜 파트너이자 진짜 주인인 경우다. 한국의 특수성이란 그 많은 임직원이 주인도 아니고 파트너도 아니지만 의식만큼은 이에 걸맞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가족적 무한 책임은 계열 기업집단으로 확장되며 촘촘한 끼리끼리 하도급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 가족이 되지 못한 이들, 적자가 아닌 서자(비정규직)들은 더 없이 살기 힘든 특수성을 지닌 사회를 만들게 된다. 

사실, 되지도 않는 전문성을 가지고 저녁내내 끙끙대느니 그 때 그 때 전문가를 고용하고 해고하면 되지만 구조상 쉽지가 않다.
비용은 정직원 채용과 내부 거래 프로젝트용으로 충당되다 보니 혼자 밤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끼리끼리 다단계 하도급은 흥하지만 역으로 B2B 직거래 서비스업은 흥하지 못해, 기대했던 ‘낙수효과’도 잘 보이지 않고, 사회에 축적되는 전문성은 떨어진다. 

그런데 한반도의 역사에 있어 한국인이 과연 이러한 인위적 가족 집단을 만드는데 탁월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조사해 봐야겠지만 지극히 20세기적인 일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서구적 시민사회식 근대화를 거치지 않고 자본주의로 급이행한 시기의 기억이 21세기의 지금까지 잔존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운 일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여러분의 야근이 위와 같은 이유에서 한국 경제의 혈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여러분이 오늘 야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 또한 아니라는 점이 씁쓸하지만.

[김국현의 논점] 대기업 정규직의 원숭이산

닫힌 우리 안에선 많은 부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혈기 왕성한 청춘들을 폐쇄된 공간에 몇년 가두어 놓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는 동물원의 원숭이산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동물행동학은 심리학과 사회학의 원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준다. 

인간 사회라는 울타리, 사회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동안은 넓은 광야로 보인다. 그 팽창하는 지평선을 향해 모두가 신나게 달려나갈 수 있다. 고도성장기의 한국이 그랬고, 지금 그 차례를 맞이 한 개발도상국들이 그렇다. 넘어지고 까지고 그래도 마냥 즐겁다. 함께 성장하는 일이란, 광야를 내달리는 일이란 그렇게 어딘가 뜨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이란 언젠가는 멈추는 것이다. 

제조업 위주, 정부 주도의 국가의 성장도 언젠가는 멈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성장이 멈춘 원숭이산에서 피끓는 청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스펙과 학벌로 서로를 비교하며, 자기계발로 자신을 학대하며, 모두가 성장하던 시절의 쌍두 마차,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을 타고 내달리는 날을 꿈을 꾸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이십대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가 학력과 스펙을 기준으로 차별의 벽을 쌓고 상대를 밀어내고 있는 오늘날의 이십대들의 뒤틀린 모습을 세밀히 탐구하고 이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책이다. 비정규직, 지방대생의 눈물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차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십대들은 ‘정상적인 삶’과 ‘윤리’와 ‘공정’ 등에 …

그러나 GDP의 35%를 삼성과 현대가 차지하고 있는 나라. 2차산업 위주의 국가 성장의 한계 상황을 우리는 적나라하게 목격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고용흡수율도 세부담율도 결코 35%는 되지 못할 것임을 모두가 느끼고는 있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2차산업’도 ‘정규직’도 이제 닫히고 있는 광야에 지는 석양과도 같은 것이다.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지난 MB정권이 그 시절로 돌아 가고 싶은 국민적 환각에 편승해 당선되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3차산업’과 ‘비정규’라는 조합, 이 원숭이산의 질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길. 

예술이란 스타트업이란 자영업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미래의 직업들도 결국 이 비정규의 서비스업이다. ‘알바’라 아유받는 비정규 3차산업이 어쩌면 예기치 않게 찾아 온 우리의 미래인 셈이다. 그러한 미래 앞에 선 우리가 대(공)기업 정규직 앞에만 줄서고 서로를 밀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대(공)기업 정규직의 끝자락을 행여 놓칠까 꼭 부여잡고 자리보전 앉아 있는 어른들로서는 말해줄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는 것이다. 

피라미드같은 원숭이산 꼭대기에서 어른들은 
누구도 일어날 생각 없이 
진보도 보수도 모두 함께 앉아
이미 지는 석양을 바라 보고 있다.

좀처럼 비지 않는 그 자리를 오늘도 꿈꾸는 청춘의 원숭이들은 
울타리 문이 열려 있는 줄도 모른 채,  
아등바등 서로를 밟으며 원숭이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잔혹한 생명이여. 생명의 다큐멘터리는 늘 그렇게 슬프다. 

[오늘의 품평] Kindle Whitepaper 2

속칭 킨들 페화의 신버전.

자연스러운 자체 발광에 종이 느낌의 e-ink. 
어슴프레 노을이 지며 아주 약간의 간접조명이 나를 비출 때
오로지
이 때만 어울리는 미묘한 독서 기기
(다른 때는 ‘고급’ 액정의 태블릿도 만만치 않게 쾌적)

대상 사용자:

  • 영어와 일본어만 읽으실 분 (한글 되기는 되겠지만 geek의 세계)
  • 태블릿으로 독서하려 했으나 결국 딴 짓만 하시는 분 (사전 정도는 멀티태스킹 가능)
  • 작심삼일이 기계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이해 하시는 분 (보다 만 책처럼 ‘보다 만 킨들’이 책 위에 쌓이기 쉬움)


원래 쓰던(책 밑에 깔려 있던) Kindle DX와의 가장 큰 차이는 손에 감았을 때의 느낌. 
작은 문고의 기분이 된다. 역설적으로 문고 기분 이외의 용도에는 맞지 않음. 
2라서 좋은 점은 이런 정도.

책을 사고 또 보는 일련의 과정이 복잡하지 않고, 눈이 편하다. 끝.

그러나 서점체인으로서의 아마존이 동네책방을 모두의 손 위에 올려 놓는다는 점에 Kindle의 가치가 있다.

이들이 우리 전자서점업에 있어서도 ‘아이폰 쇼크’를 가져 오리라 기대되는 이유는 

지난해 기준, 전체 도서 시장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오리지날 ‘아이폰 쇼크’와 마찬가지로 
기기의 완성도보다는 오히려 그 생태계의 낯섦과 두려움이 주는 파장.

[김국현의 논점] 한국 고유의 문화 SI – “내 일은 내가 하지 않는다”

SI라는 관행이랄까 업태는 한국에만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다들 믿지 않는다. 
아, 일본에도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종류의 ‘조직적 하도급’은 대기업 위주의 고도 성장을 거친 나라에서 관찰되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그룹 계열에 의해 치밀하게 체계화가 되고 또 다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시장으로는 독보적이다. 
국가 정책의 연장선에서 형성된 기업 집단에서
지배 구조 강화(예: holding company)와 고용 효율화(예: 외주업체계약에 의한 실질적 고용 유연화 효과)를 위해 적응하며 발생한 구조, 
이것이 한국 고유의 문화 SI의 실체다. 
국민 모두 갑과 을이 같은 로고를 공유하는 일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은 따라서 극히 현대적인 일이다. 

경영과 시장으로부터 발생한 모든 변화 요청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모으고 모아 ‘차세대’로 포장한 채 타인에게 던지는 구조도 바로 이 SI에서 태동한다. 일단 받아주는 이가 있어야 이런 일도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단 이 덩어리를 받은 다음부터다.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보면 그 안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일들이 가득하다. 투입된 여러분은 생면부지 누군가의 꿈을 대신 구현해 줘야 한다. 어째 흥이 잘 나지 않는다. 

‘차세대’라는 개념 또한 한국적이다. 물론 외국에도 ‘빅뱅’이라는 말은 있지만, 우리와는 정도와 규모가 달라서 재개발이 아닌, ‘시스템의 치환’ 정도를 의미할 뿐이다. 수백억, 수천억, 1조 단위의 대공사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조금씩 손을 본다. 왜 그렇게 할까, 그 정도가 직접 스스로의 손을 더럽혀 가며 작업을 할 수 있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이는 예외가 없어 공공도 금융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도 직접 손을 더럽힌다. 

The project was mostly staffed with Public Safety employees from IT development, infrastructure, database, networking and project management. When the project was initiated, approximately six to eight team members would meet weekly to discuss various technical issues and the high level architecture. Initially, each team member spent approximately four to eight hours a week working on the project. We also hired a full-time contractor to assist in designing the technical architecture of the solution.

이 케이스 스터디는 메인프레임을 탈출(exodus)하게 된 어떤 미국 정부 기관의 전형적인 스토리다. 이 파란만장한 무용담은 수많은 교훈을 담고 있지만, 이 스토리의 본질은 한 줄로 요약된다. 

“내 일은 내가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90년대까지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짜는 문화가 어느 정도는 있었다. 
“3년 수행하지 않으면 콘솔에 앉히지 않는다”는 전산실의 문화가 각 기업에는 숨쉬고 있었다. 그렇게 후배를 뽑아 키웠고 조직은 성장했다. 그러나 세상이 복잡해진 탓인지 아니면 성장이 멈춰 더 이상 후배를 뽑을 수 없어서인지 이들은 손을 놓는다. 콘솔을 대신 맡아 줄 자회사가 등장했고 말도 잘 들으니 뭐 괜찮았다. 자회사는 다시 뒤로 돌아 똑같은 행동을 하면 되었다. 몸짓으로 맞춰야 하는 제스쳐 게임처럼 갑->을->병->정의 게임은 계속되었고 엉터리 답이 늘 돌아 왔지만 뭐 괜찮았다. 그만큼 ‘사장님’도 많이 생기고 ‘마진’도 많이 생겼으니, 업계는 활성화된 듯 보였다. 정부도 나서서 옳거니 하며 10만대군을 양성해주겠다 했다. 

그리고 눈 떠 보니 기업의 중심에 앉아 있던 ‘프로그래밍’은 하도급 최말단으로 자리잡게 되고, 결과적으로 기업도 개인도 불행한 세상이 찾아 온다. 대신 ‘갑 질’에 맛을 들인 기득권과 마진의 짭잘함에 취해 ‘보도방’으로 진화한 중간자들에 속아,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개발해 놓은 것은 그 옛날과 별 변화 없는 업무에 화면만 바뀐 것들. 외과수술이 아닌 성형수술이었다. 

그나마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대개 그렇지 않다. 성공이라며 조용히 덮기도 하지만 성공이 아니라는 것은 본인들도 안다. 

금융권 CIO들은 지난 1기 차세대의 경험으로 더 이상 빅뱅 방식은 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주주에게 갔을 수 있었던 배당금, 복지를 위해 쓰일 수도 있었던 세금은 공중으로 흩어진다. 위의 오하이오 당국의 내부 IT팀이 절실함 속에서 원하는 결과만을 얻어낸 것과는 천양지차다. 

외국에는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까? SI는 없지만 IT Services와 Outsourcing/Offshoring이 있다. 한국식 SI와의 차이는 내부 직원이 주가 되어 “정확한 태스크에 대해 직접 고용(구매)”한다는 점에 있다. 모호한 결과물을 장기에 걸쳐 다단계 하도급이 만드는 일과는 사뭇 다른 셈이다. 

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내 일을 내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는가? 앞으로 여러분께 들려줄 이야기는 이 소박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상당수 IT계열사 매출은 주력계열사들에 90% 이상 의존했다. 그나마 IBK시스템과 하나INS 정도가 대외사업을 일부 수행하는 정도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의 해체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일부 금융그룹의 IT계열사들이 뒤를 이어 해체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농협중앙회에 위탁 운영하고 있던 전산시스템 업무를 농협은행이 직접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김국현의 논점] 시간을 파는 사람들

우리는 대개 시간을 팔아 살아 간다. 
시급에 맨먼스에 노임단가에
삶의 가장 소중한 자원, 시간은 그렇게 팔려 나간다.
이를 피할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다. 
예컨대 여러분이 자본가라면 피할 수 있다. 타인의 시간을 사면 되니 말이다. 잔혹한 자본주의의 끊을 수 없는 참맛이다.
자본가가 아니라도 방법은 있다.
여러분의 ‘상품’을 팔 수 있다면 피할 수 있다. 앱을 팔고 책을 팔고 하다못해 유튜브를 팔면 여러분은 얼마간 쉴 수 있다. 
상품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자신이라는 상품’을 팔수도 있다.
직장인도 정규직이라면 이런 것이다. ‘인재’라며 연봉으로 선매하는 것이다. 되기가 어렵지 일단 되면 편해진다. 구조상 갑이든 을이든 타인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시간을 파는 이들은 비정규직, 알바, 외주 등 다양하게 불린다.

이쯤 읽다 보면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라면 
상품화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이 전략적으로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지난 세기는 포드에서 빌게이츠에 이르기까지 ‘상품화를 통한 성공’을 증명해 준 시기였다. 
팔 것이 없다면 자신을 판다. 상품에 붙어야 할 ‘스펙’이라는 단어가 인간에 의해 쓰이기 시작한 사회라면 더 본능적으로 이를 느끼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들 정규직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기 전에, 자본주의 일반을 이야기해보자.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으로 팔려 가는 사람들은 양극단에 있다. 한쪽에는 시급 비정규직이 있고 또 한 쪽에는 변호사나 컨설턴트 등 소위 Billable Hour로 청구하는 이들이 있다. 시급으로 치자면 못잡아도 100배의 차이가 현실적으로 난다. 
최하층의 전자가 그렇게 유지되는 이유는 ‘즉시 수급과 대체가 가능한’ 재화이기에 그렇다. 모든 것이 매뉴얼화가 되어 있어 즉시 따라하기만 하면 되므로 재화 자체의 차별점은 0으로 수렴되고, 유일한 차이는 투여하는 시간뿐이다. 여기서의 경쟁은 단가뿐이고 이는 허용 한계까지 하락한다. 최저 시급으로 규제를 해보지만 계산에 맞지 않다면 오히려 고용을 하지 않을 뿐이다. 
최상층의 후자가 그렇게 유지되는 이유는 발주자가 그 상품을 평가할 수 없다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이 케이스가 언제 어떤 식으로 끝날지 감이 없는 상황이기에 시간으로 청구하고, 갑은 을에 끌려다니기 쉽다. 시간을 끌 수록 돈을 벌게 되는 Billable hour의 불합리성은 이미 수십년간 논의 되고 있지만, 고치려 하지 않는 이유는 발주자가 무엇을 사고 있는지 어느 정도 모호해야 이 비즈니스는 짭짤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힘조절’할 수도 있고, 어차피 고생하는 것은 투입된 직원들 뿐이므로 파트너의 몫도 땡길 수 있다. ‘어떤 건에 얼마’가 되는 순간, 시장의 가격 비교는 발생한다. 
현재와 같이 왜 비싼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비싼 이들로 포지셔닝할 수 있다면 이 메카니즘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문제는 이 양극단의 사이에 있다.
이도 저도 아니지만 무조건 시간으로 사고 팔려는 일이 빈발하는 것. 대표적인 것이 맨먼스 도매가로 팔려 가는 IT 하도급 프로젝트들. Billable Hour처럼 고객에게 고자세로 청구할 수도 없고, 시급 알바처럼 당장 아무나 와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품화가 이루어져 어떤 일을 끝내면 얼마인 것도 아니다. 애초에 상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 개인이라는 상품의 ‘스펙’은 무의미하고 시간당 노임단가가 나타난 엑셀표면 OK다.

사는 사람도 무엇을 만들어 오면 얼마를 주겠다고 그 상품을 말할 수도 충분히 있었지만,
귀찮아서인지 뭐가 뭔지 몰라서인지,
여하튼 시간으로 사람을 산다. 
와서 한 번 만들어 보라는 것. 
발주자는 자신이 무엇을 애초에 원했었는지 완성품을 보고 깨닫는다. 
“어, 이게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하도급의 시간 판매는 늦어지면 추가 시간이 청구되는 것이 아니라 지체보상금만 청구 된다.
시간을 팔았지만 어느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을 파는 일이란 궁극적으로 기계에 의해 대체 될 수 있을 정도로 매뉴얼화된 일, 아니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충분히 강해 그 상품성을 은닉하고 싶은 일부의 업태에서나 어울리지만, 이런 이야기 좀처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품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상품으로 발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지금 자신이 시장이 원하는 상품이라 포지셔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자신이 상품으로 판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역시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결국 모두 시간을 사고 판다.
충분히 창의적일 수 있었던 노동을 단순화하여 개선의 동기를 하락시키고, 자신이 무엇을 사고 팔고 있는지 자신들도 모르게 되는 양극단의 단점만 흡수한 채, 사회 전체의 생산성만 하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자신이 상품이라 굳게 믿으며 입도선매의 꿈을 꾸고 스펙을 쌓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런 상품은 필요하지 않은데요 ㅎㅎㅎ”, 라고 말하는 듯한 어른들의 표정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오늘의 품평] G Pad 8.3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장 이래,
이 둘의 사이즈는 점점 가까워지며 멀어지며 모든 치수를 등장시켰다. 
3, 4, 5, 6, 7, 8, 9, 10, 11, 12… 

원사이즈도 아니고 S/M/L/XL도 아니고
스마트디바이스도 그야말로 사이즈 맞춤의 시대. 

그런데 최적의 사이즈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각자의 생활 양식과 노안 정도와 근력에 따른 기준을 세워야 한다.  
예컨대 나는… 

1. 잡지의 한 면을 읽을 수 있는 최소 크기. (Nexus 7은 눈이 침침한 많은 이들에게 무리)
2. 한손으로 편하게 누워서 독서할 수 있는 최대 크기. (iPad Air도 약간 무겁다)


8.3 인치의 G Pad는 위와 같이 잡고 누워서 보면 의외로 쾌적. 
검지와 엄지를 베젤위에 살짝 두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자연스럽게 지탱. 
화면 넘기기는 엄지로 살짝.

태블릿 스크린이 대부분 Full HD 아니면 Retina로 초고해상도가 되어 가는 지금
(잡지 및 PDF 독서용으로는 이 두 해상도 이하의 태블릿은 금물), 
의외의 차별화 포인트는 생활 습관에 맞는 화면 사이즈.


그건 그렇고 이 G Pad 8.3 (V500)
미국에서는 Google Play Edition (모델명 V510)으로도 팔리고 있는데, 
순정 OS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육신은 그대로인채 혼만 바꾸면 “될지도 모르니” 매력적인 유혹. 

· Google vs. LG

이 기계의 소스는 이미 공개되어 있으니

LG-V510(G-Pad 8.3 Google Play Edition)_Android_KK_V510_11c

많은 독지가들이 오늘도 혼의 교체를 위해 노력중인 것이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은 모양이라 V500과 V510의 하드웨어가 다른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 것 같기도… 

어쨌거나 하나의 기계에 공식적으로 두 계열의 소프트웨어 지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의외의 보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