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휘둘린 시대, 성장을 하는 일에 대해서 : 『 오프라인의 귀환 』중 머릿말에서

신간 <오프라인의 귀환> 중 머릿말을 게재합니다.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 우리들. 가끔 이제 이 세상은 온라인이 대세가 된 듯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가 돈을 버는 곳 그리고 돈을 쓰는 곳은 여전히 오프라인이다. 급성장하는 온라인 쇼핑도 300여 조의 소매시장 중 이제 10%를 넘어 20%로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불경기 속에 한 푼이라도 저렴하게 사려면 역시나 온라인이 매력적이었다. 검색하고 비교해서 클릭 한 번 눌렀더니 어느새 배송이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의 효율은 소비자를 검색창에 붙들어 둔다. 그런데 온라인 덕에 최저가로 산 것 같기는 하지만, 사고 나서도 어딘가 허전하다. 배송이 빨라서 좋지만, 물건을 들고 집으로 오던 그 발걸음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오늘도 밤늦게까지 손품을 팔아 구매 버튼을 눌렀지만, 친구와 함께 팔던 발품의 느낌이 아쉽다. 온라인의 판매자는 경쟁자보다 더 많은 물건을 팔아도 기억에 남는 고객의 얼굴은 없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이문은 얕아진다.

그렇다. 비교되어야 할 것은 가격 이외에도 많을 텐데, 클릭 한번에는 모두 담길 수 없는 물건을 사는 기쁨이 있을 텐데. 꿈과 설렘과 즐거움을 온라인이 자극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느끼는 공간은 여전히 오프라인이었다. 우리 스스로를 업로드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동네 가게라면 모를까 대도시의 상점이 유동인구를 모두 기억해 줄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모든 것이 기록되고 계산되는 세상이다. 온라인에서 유행한 ‘개인화’도 빅데이터도 기록과 계산에 의해 남과 나를 다르게 대접할 수 있게 돕고 있다. 내가 온라인에서 무엇을 사고 무엇에 관심을 주었는지 이미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억력으로 하는 일은 겨우 맞춤 광고다. 어딘가 허전하고 불편하다.

O2O, 즉 온라인에서 오프라인(Online to Offline)이라는 트렌드는 이 허전하고 불편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일어난 수많은 온라인의 혁신 그리고 그로 인해 온라인으로 쓸려간 많은 소비자를 우리가 사는 오프라인으로 데려오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O2O가 오고 있다. 지금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귀환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 온라인에서 일어난 혁신이 오프라인으로 오고 있다. 온라인이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혁신이 지금 오프라인의 현실로 오고 있다. 그 비결은 모두가 알고 있는 스마트폰. 

혁신 다음에 오는 것은 고객이자 소비자인 우리 자신이다. 가격 비교를 위해 늦은 밤 일상에 지친 몸으로 PC를 켜던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웹을 훑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습득한다. 현장에서 전국 점포를 검색으로 훑어보고 바로 주문을 하기도 한다. 소비자는 온라인에 갇혀 있지 않았다. 이처럼 혁신과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돌아오는 사건이 바로 O2O였다면, 그렇게 돌아온 소비자를 위한 안락한 소비 유통 채널을 꿈꾸는 것이 바로 ‘옴니채널’이다.

이처럼 O2O도 옴니채널도 모두 달라진 소비자가 만드는 소비행동의 변화에 대한 대응을 나타내는 말이다. 소비자는 점점 더 강해졌다. 

2011년 대만국립건강협회의 자료에 의하면 쇼핑을 잘 하지 않는 노인보다 정기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쇼핑하는 노인이 25%나 사망률이 낮았다고 한다. 남성 노인의 경우 여기서 3%p가 더 낮아졌다. 쇼핑으로 몸을 움직이고 선택의 과정에서 뇌를 쓸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군중 속에서 외로움이 줄어드는 효과까지 있어서라고 한다. 모두 온라인에서는 얻을 수 없는 오프라인 특유의 경험 가치다. 

고객 경험 가치(Customer Experience)가 중시되는 시대가 올수록, 인간이 만족을 느껴왔고 키워왔던 시공간인 오프라인에 대해 기대가 커질 것이다. 차나 명품 시계를 오프라인에서 보지도 않고 온라인에서 덜컥 주문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구매의 과정이 순간순간 선사하게 마련인 즐거움과 설렘을 온라인에서 증발시킬 정도로 통 큰 사람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소비란 가격 비교 후의 조달을 넘어, 상품 및 서비스와 만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구매 후 사용하기에 걸친 긴 과정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만족이 바로 삶의 질이기도 하다는 것을 점점 많은 이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내버려두었던 오프라인이야말로 성장을 향한 최전선이라는 반전, 오프라인의 귀환이 시작되고 있다. 

[미디어오늘: 김국현 컬럼] 창조경제보다 해커의 정신

지난 달 컬럼이지만 블로그에 게재하는 것을 잊어서 뒤늦게 올립니다.

‘창조경제보다 해커의 정신’은 송고시 원제.

중국은 좇아오고 있고, 미국은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한국은 조바심이다. 그러나 중국도 미국도 한국과는 이미 애초에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 한국은 안중에 없다. 우리는 그들을 과도하게 의식하지만, 그들의 방식은 별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해커의 정신… 

한국에 가장 절실하지만, 
중국보다 모자란 이유는 한국의 관치사회주의가 중국의 공산주의보다 강해서일지도 모릅니다. 

[미디어오늘: 김국현 컬럼] IT발 교란에 대한 두 가지 입장

‘IT발 교란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은 
(늘 그렇듯) 송고시 제목

소수에게 집중된 억울함은 이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게 할 인센티브를 준다. 정치권에 로비를 하거나 정부에 소원하는 등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왜냐하면 기존 질서의 유지가 바로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결속된 ‘정의’는 정치권에게는 지지기반이 되고, 정부에게는 자기 부서의 존재의미가 된다.

당연해 보이는 변화가 때로는 ‘혁명’이라 불리는 이유는
타인의 정의와 대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 입장에 대한 사례1과 사례2는 
IT에 몸담고 있는 개혁파의 입장이라면 
비교적 입장 정리가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례3은 어떠한가요? 

『 오프라인의 귀환 』이 출간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신간  『 오프라인의 귀환 』이 출간되었습니다. 주요 온라인 서점 및 대형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Yes24 – 오프라인의 귀환
알라딘 – 오프라인의 귀환
교보문고 – 오프라인의 귀환

스마트폰이라는 요물이 등장한 이후, 우리의 생활은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우리 삶의 주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소비라는 생활도 그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대변화의 시대는 소비자의 행태를 바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한국은 고령화, 저출산, 독신증가 등 사회 구조적 변화, 지독한 규제와 제로섬의 경쟁 등 추가적인 과제를 껴안고 있습니다. 서비스업의 규모와 생산성 모두를 늘리지 않으면 성장의 활로를 찾기 힘든 위치에 서 있는 한국으로서는 힘든 숙제들입니다. 지금의 변화란 따라서 그 전략을 세우기 힘들었기에 가혹한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변화란 무엇이고, 그럼 우리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현장의 의문에서 이 책의 집필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년간 여러 기업과 고민했던 일들은, 이제는 우리사회에서도 옴니채널과 O2O(Online 2 Offline)라는 유행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달라진 세계와 달라진 소비자를 이해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업계 지형 변화는 필연적으로 일어나겠지요. 이 교란은 누군가에게는 기회로, 또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쇠락의 전조가 될지도 모릅니다.

온라인을 분리할 수 있었던 시절, 오프라인에게 온라인은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이 분리되지 않는 스마트폰 이후의 세계. 오프라인은 자기 자신이야 말로 온라인 너머의 새로운 기회라는 것을 이제는 깨닫게 된 것이지요.

 

흥미로운 세계가 돌아오려 하고 있습니다.

 

김국현

[주간경향: 김국현컬럼] 페이스북, 뒤늦게 시작한 ‘네이버화’

자, 인터넷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이 현상이 ‘퇴화’는 아닐지 걱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먼저 웹의 ‘네이버화’를 겪은 국민으로서 세계인을 향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주간경향 [weekly.khan.co.kr]

한 사회에 네이버 같은 기업이 하나쯤 생기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저도 네이버, 애용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네이버화’되어 가는 것은 조금 쓸쓸합니다. 
‘네이버화’란 거대한 주류 체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이 보편적이고 당연시되는 것을 말한다고 봐도 좋겠습니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특히 유소년기에 자율성(autonomy)과 주도성(initiative)을 발현할 기회를 잃게 되면 
결국 여러가지 문제가 생긴다는 점은 발달 심리학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시각입니다. 

온라인에서의 개인과 기업도 살아 있는 것, 결국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리 주어진 틀과 이미 만들어진 템플릿에 의존하게 되면,
사회에도 자연산은 사라지고, 양식만 남겠지요. 

이 현상은 이미 한국 사회에 너무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한국에 만연한 프렌차이즈적 의존성도 그 중의 하나겠지요. 
가게도 자영업도 다른 모든 것도 

자율성과 주도성을 잃어 버리고, 
시스템의 말단에서의 콩고물 정도로 안분지족할 수 밖에 없게 되는 환경에서는,
작지만 강한,
100년의 노포(老鋪)란 생기기 힘든 법입니다. 

[주간경향 : 김국현 컬럼] 핀테크, 청년을 위한 혼란

‘핀테크, 청년을 위한 혼란’은 송고시 제목
(매체 게재시 제목은 거의 90% 확률로 바뀌는데, 이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은근히 재미있다)

핀테크 따위 없어도 이 사회는 또 어찌어찌 굴러갈 것이다. 이 시각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 아니면 틀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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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관한 여담이지만, 
기사에 삽입된 그림에서
저 청년이 들고 있는 피켓… 
where is my bailout? 

bailout 은 정부와 회사 등 大馬에게만 허락된 세상,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잔혹한 세상이다. 

4.0의 학점을 위한 시간 투자와 거액의 학비라는 금전적 투자,
그 수익률이 0에 가까운 잔혹한 세상.

빚을 져 투자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었기에, 이 잔혹한 세상에서는 누구도 bailout해줄 리 없다. 
그것이 (가족의) 교육이든, 집이든, 차든, 보험이든,
미래를 빠르게 당겨 오려는 마음에, 
대출 사인을 하기 전에 뺨을 꼬집어 봐야 한다. 그리고 이 잔혹한 세상을 직시해야 한다.

[미디어오늘: 김국현의 시사IT] 미디어는 어떻게 퇴화하는가?

‘미디어는 어떻게 퇴화하는가?’
는 송고시 원제. 

그 덕에 미디어가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산적한 사회문제로부터는 모두가 눈을 감게 될 수 있었다. 마음 편하고 안락하게. 양질의 미디어를 만드는 일은 귀찮고 힘이 든다. 대신 사회문제는 바보 미디어를 자양분 삼아 마음껏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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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도 마음 편하고 안락했습니다.

[주간경향: 김국현 컬럼] 치킨집이 만만치 않은 이유

세계 정복도 좋지만, 오히려 지금 손에 잡히는 것을 가지고 지금 밟고 서 있는 이 지역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일도 전혀 우습지 않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나와도 어차피 사양산업의 꼬리밖에 되지 못할 바에야, 한 마리 늑대가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한국이 전후 60년간 겪었던 성장의 로또가 또다시 찾아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게다가 그것만이 정답도 아니다. 훨씬 더 많은 세월, 이 땅의 주민들은 각자 고장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지역구의 삶을 살았다.
주간경향 [weekly.khan.co.kr]

송고시 원제목은 “치킨집 차리는 일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

영화 로보캅이 개봉되던 80년대, 
급변하는 시대(일본발 제조업 혁명) 앞에서의 디트로이트(쇠락을 앞둔 미국 제조업)적 정서란
그 영화에 그려진 미래상처럼 우울한 것이었다. 

2015년의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분이 80년대 디트로이트의 젊은이라면 어떤 길을 가야만 했을까? 
Big 3(GM, 크라이슬러, 포드)의 공장(한국이라면 재벌기업/공기업)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것도 인생이었고,
아니면 자본주의의 다음 스테이지(금융과 IT)의 꿈을 찾아 고속버스에 올라 타는 것도 인생이었다.

2015년의 한국, 우리에게 그 길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그 다음 스테이지(금융과 IT)조차 끝물이라면,
이제 우리는 어디를 향해 고속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것일까? 

올해는 이 길에 대한 이야기를 시급히 해보도록 합시다.
 

[미디어오늘: 김국현의 시사IT] 클라우드화하는 고용

한편 한국의 정치와 언론은 자신의 지지기반에 영합해서, 당장의 인기를 살 수 있는 의견만 개진하고 있다. 고용기간을 4년으로 늘린 것을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랍시고 내놔 신분제를 고착하려는 정부 여당도, 모두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판타지를 무책임하게 유포하는 야당도 지금 우리가 직면한 사태의 본질도 심각성도 이해하려 하고 있지 않다.

원래 송고시 제목은 ‘클라우드화하는 고용’. 

기업은 왜 비정규직만 뽑을까요? ‘일물일가’가 무너진 시장에서 싼 물건을 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IKEA가 들어오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과연 북구식 고용관행을 한국에서도 시도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적어도 광명점에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시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파트타임이든 정규직이든 차별이 없다고 합니다. 인재가 학업과 병행하며 파트로 일해도 바로 팀장으로 승진할 수도 있는, 신분제가 없는 나라에서 온 기업이니까요. 

한국에서 한번 정규직에 세이프된 이들은 출산이나 학업 등 인생의 주요한 시점에서도 2등 시민으로 추락할까 두려워 노동 시간조차 조정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가장 문제는 노동생산성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활발한 인력 이동이 일어나지 않아, 사회가 고인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고인 것들처럼 서서히 상해가겠지요. 

우리 모두가 힘든 이유입니다. 




[가비아: 김국현 컬럼] 지금 여러분의 그 프로젝트는 아마도 실패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다른 이를 위해 프로그램을 짜주고 있다면, 그 프로젝트는 아마도 대개 실패할 것이다. 이런 불경스러운 발언이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실패하는 것은 그 프로젝트만이 아니라는 점 덕일 것이다. 특히나 차세대라는 간판 하에 대규모 자본이 투하되어 대규모 인원이 외주로 고용되는 장기간 프로젝트는 거의 실패해 왔고 실패하고 있으며 실패할 것이다.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고 CIO가 업계지에 어찌어찌 나와 인터뷰를 할지도 모른다. 경영 전략에 핵심적인 시스템이 드디어 완공되었다고. 그러나 들어간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지는 명쾌하지 않고, 앞으로 들어가게 될 진짜 비용에 대해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 상태임이 그 어색한 미소에 드러난다. 그 프로젝트는 허황된 일이었음을 본인도 듣는 이도 모두 알고 있지만, 그저 모두 함께 침묵할 뿐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역들은 프로젝트 완료 도장만 찍히면 원대 복귀할 희망에 부풀어 있는 을, 이 성과를 발판 삼아 더 높은 연봉과 직위로 점프하기를 희망하는 갑. 또는 애초에 이 프로젝트의 목적 따위 별 관심이 없는 일용직들. 모두 굳이 나서서 이견을 제시할 이유가 없다. 프로젝트 덕에 그 회사의 비용은 천천히 늘어날 것이며, 대응능력은 어느 날 툭 떨어져 버리고 경쟁력은 가랑비 옷 젖듯이 서서히 저하되어 있을 것이다. 모두들 그 전에 자신은 그 곳을 떠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주와 오너와 그 기업의 소비자만 모를 뿐이다.

그런데 그나마 이런 인터뷰라도 하려면 프로그램이 돌아는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업체들의 거하게 망한 이야기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풍문을 넘어 기사화마저 되어 돌기 시작한다. 특히나 유행을 좇아 멀쩡한 시스템을 들러 엎기 시작한 이들이 그 비용과 복잡성의 부메랑을 얻어맞은 이야기가 극적이고 흥미롭다.

수천억을 말아 먹는 일은 있어도 혁신적인 모험은 차세대 기간 동안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차세대의 단골 무대라 할 수 있는 금융권에서 미래를 위해 걱정해야 할 것은 주전산기 안의 코볼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클라우드에 촉발된 알리페이나 비트코인 등 미래의 금융 모델, 그러니까 차세대 프로젝트 시작시점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들일 것이다. 이처럼 혁신이란 IT든 아니든 모든 기획된 차세대프로젝트에서 벌어질 수 없는 종류의 일이기 때문이다.

차세대라는 말을 자신 있게 붙이는 순간, 그 프로젝트란 지난하고 지루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해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을 정도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개선 작업으로 약속되었음을 의미한다. 허나 다음 세대란 이렇게 안정과 예측이 전제가 된 조율된 상황 하에서 찾아오지는 않는다. 소위 차세대 프로젝트가 성공해도 결국은 실패가 되는 딜레마는 바로 이 때문이다.

포장은 했으나 속으로 곪은 이들 프로젝트들은 결국 조직을 병들게 하고, 병든 그 기업은 시장에 의해 또 다른 도전자에게 대체된다. 이 도전자들은 정말 다음 세대를 읽을 수 있었기에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니, 누군가의 실패란 거시적으로 볼 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 생각되기도 한다.

“생산적인 프로젝트와 팀을 이뤄내는 법”컴퓨터 분야에서 『피플웨어』만큼이나 소프트웨어 관리에 심오한 영향을 준 책도 드물다. 1987년 처음 출간된 이래로 지금까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사랑받고 있는 이 책의 독특한 통찰력은 소프트웨어 개발의 주요 쟁점이 기술이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면 성공…
피플웨어 [blog.yes24.com]

 

생각해 보면 근래 성장한 기업들은 모두 하나 같이 소프트웨어의 힘에 의해 성장했다. 마치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질 수 있는 회사에만 혁신이 숨 쉴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프트웨어는 욕망의 덩어리다. 혁신은 어쩌면 그 부산물이다. 더 재미있게, 더 멋지게, 더 효과적으로, 그래서 나와 나의 제품이 더 두드러지게끔 하고 싶은 욕망. 창조의 기쁨과 발견의 쾌감. 그 욕망이 손끝에서 마법을 부린다. 모든 프로그래밍이란 결국은 욕망을 향한 해킹인 셈이다.

따라서 프로그래머라는 개인의 욕망을 도외시한 채 의무만을 이야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안타깝게도 그 끝이 뻔하다. 그 일종의 집단주의적 노동은 다른 산업 노동과는 달리 컨베이어벨트의 중간 산출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 올라가는 건물의 골조를 보며 뿌듯해 할 수도 없다. 마음먹으면 하루면 끝날 일, 한 달을 끌어도 그럴듯한 일정표가 나온다.

마음먹는 일이란 곧 해킹의 정신. 지금까지의 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전혀 새로운 제안을 하는 용기. 많은 차세대 프로젝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바쳐야만 하는 주간 보고와 업무일지는 가던 길을 그냥 가자 속삭이기 때문이다. 괜히 나서서 시끄럽게 하느니, 적당히 힘조절하여 공수를 조절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단기적으로 이익이다.

그 맹목적 행진이 도저히 유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문외한의 눈에도 그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 소문은 퍼지고 취재 기자는 찾아온다. 그리하여 아무리 자본과 인력이 추가 투하되어도 더 이상 수습할 수는 없는 경지에 도달해야 이 무의미했던 차세대의 행진은 멈추게 된다. 대개 타력에 의해.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

해산된 프로젝트의 씁쓸한 추억과 함께 모두들 어디론가 흩어질 것이다. 그 자리에는 낮아진 경쟁력, 사라진 주주 이익, IT에 대한 환멸, 더불어 피폐해지는 개발자의 삶 만을 남긴 채, 모두들 어디론가 안개처럼 스러져 가는 것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세계를 먹어치운 이래 이 체제가 기능하지 않게 되는데, 여기에는 복합적 이유가 있다.
이 파란만장한 무용담은 수많은 교훈을 담고 있지만, 이 스토리의 본질은 한 줄로 요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