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상생인가 공멸인가

이 책의 일차 공격 대상은 어쩌면 아마도 오늘 출근해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대기업이면서 노조가 있고 정규직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업장 근로자가 전체 임금근로자의 6~7%를 차지합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약 110만 명 정도가 됩니다. 그들의 평균 근속년수가 12.4년이고, 월평균 임금이 325만원이며, 신규채용 비율은 6.7% 정도입니다. (중략)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441만 명 정도입니다. 이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1.7년이고, 평균 임금은 120만 원, 그리고 신규채용률은 63.8%입니다. 다시 말해 매년 60% 이상이 직장을 옮긴다는 얘기죠. (중략) 이것이 우리 노동시장의 양극화 실태입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노동운동은 (특히 미래의) 노동자 일반을 대변한다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경력자 채용이 1997년 43%에서 2003년 70%로 늘고 지금은 80%대 수준에 달하고 있는데, 이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청년 실업이 높아지고 있는 겁니다.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30대 대기업과 공기업 금융업 취업자 수는 1997년에는 158만 2,000명이었는데 2004년에는 131만 명으로 7년 동안 27만 2,000명이 감소했습니다.

즉 언제 태어났느냐에 따라 기회가 달라지는 세다간 격차는 더욱 무섭다.

개인적으로 정말 두려운 것은 노동 시장 변화 현상 전체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무신경이다.

비정규직으로 조직의 하층부를 구성하여 절약한 비용으로 현존 연공서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이를 질타하는 이는 드물다. 정치권은 장년층이나 노년층에만 신경이 가 있는데, 그들 스스로 장년층과 노년층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곳이 표밭이기 때문이다. 진보라고 다르지 않는데, 노조라는 기득권층과의 연대도 역시 표밭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설령 기적과 같이 정규직으로 공기업/대기업의 하층부에 들어간다고 한들 허리가 두터워진 비만 조직의 팔다리로 혹사당하다가 연공서열 시스템의 붕괴와 함께 허망해질 수 있는 것이 슬픈 현실.

그것이 미래이자 곧 닥칠 현실이다. 불가역적 세계화와 주기적 금융위기와 그리고 이상계 혁명은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어리광 부릴 틈이 없다. 진보란 미래를 위한 진보여야 하고, 자유주의란 이 미래를 활보하기 위한 모두의 자유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과거의 철밥통에 기웃거리고, 어른들은 아직까지도 땅 파는 일 가지고 싸우면서 세월을 보내는 촌극을 하고 또 전국민은 누워서 이를 멍하니 지켜 보고 있으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기득권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무력화할 고용 유연성은 무엇일지, 또 어떻게 이 바뀐 세계의 새로운 직업관과 기회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지. 요즈음 나의 고민은 온통 이쪽으로 가 있다.

OFF학

주말에 이 책을 읽으면 죄책감과 열등감에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 한 번뿐이라는 절대진리가 뇌리를 스치는 순간,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자립”과 “계획”의 테마는 가끔은 열폭하는 우리에게도 절대 필요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오마에겐이치 답게 노는 것에 대한 생각도 거침없다.

특히 우리와 같이 자녀에게 올인하는 삶의 방식은 부모도 자식도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 대한 일침, 더 나아가 애들방을 없애고 서제를 두라는 점은 묘하게 설득력 있다. 이 것만은 모두 실천하도록 하자.

그러나 주말은 금요일 밤부터 시작하여 일요일 저녁시간으로 끝. 그 이후는 회사 일을 생각하자는 부분에서 또 다시 우울해질 수 있으니 요주의.

프리 ( FREE )

낭비 가능한 비트가 몰고 올 불가역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총서.

폭주중인 ‘무어의 법칙’은
한계 비용을 한없이 0에 가깝게 하며
네트워크 안에서의 생활을 밖의 그것과는 다른 격차를 만들 텐데,
이 것은 어쩌면 기회.
이를 가능하게 할
‘풍요 사고(abundance thinking)’를 하자.

이 것이 본서의 요약.

대표적 실제 사례를 일목요연 분류 나열하며 제시해주고 있지만,
그렇지만 그래서 어떻게 이 프리의 메카니즘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적용할지에 대한 궁극의 결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고 있다.

수많은 기업은 이에 적응하고자 분투중이고, 내가 재직중인 마이크로소프트의 *Spark시리즈도 일례로 소개되어 있다. (창업자웹사이트제작자 중 아직 가입 안 했으면 손해…)

그러나 본서와 같은 신경제식 공짜 역학에만 집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간의 육신의 생활은 이상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이상계조차 현실계의 물리적 요소의 제약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 간과되기 쉽다. 정말 돈이 들어 가는 것은 어쩌면 현실적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말콤 그래드웰이 논박하듯 예컨대 Youtube의 천문학적 회선비는 대표적 예.)

그렇기에 아무리 ‘전술로서의 공짜’(예컨대 교차보조금)가 의미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만능의 경제 법칙은 될 수 없다는 상식을 이 책은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를 반박하는 척하지만 결국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를 이야기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다만 이 책이 공유하고자 하는 희망은 그 비용을 (내가 누구든) 내가 내지 않을 희망이 이제는 있다는 것.

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이 것이 ‘비트 경제와 공짜 가격이 만드는 혁명적 미래, Free’의 본질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