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컴퓨팅 애플리케이션 아키텍처

클라우드 컴퓨팅이라고 하면 기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은 경영의 이야기다.

그 이해를 위해서는 자본 비용(Cost of Capital)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설비 자본에 관한 코스트를 말하는데, 감가상각 및 금융비용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설비투자를 모두 자기자본으로 조달하는 경우에는 감가상각비 정도만 고려하면 되겠지만,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대부분의 기업들의 경우 대개의 경우 빚을 져서 설비투자를 하는 셈이니 금융비용까지 들어간다. 즉 적어도 이 비용 만큼의 수익을 내야 하는데, IT투자란 스타트업이나 중견기업이나 쉽지 않은 것. 그래서 VC나 은행에게 손을 벌린다.

흔히 사업을 할 때 제일 고민스러운 부분은 비수기에 맞춰진 생산성으로 성수기를 맞이하는 순간, 생산성이 증가되지 않아 불필요한 증원을 하게 되고 그것이 인건비라는 가장 큰 고정비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생산성은 쉽게 탄력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IT도 결국 마찬가지다. 가용성이나 확장성 면에서 피크를 맞아 본 적 없던 시스템이 피크를 맞아 할 수 있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설비투자 뿐이다. 그러나 그 설비가 내일이 아닌 모레에도 필요할지는 자신이 없다. 이 부침의 과정에서 비즈니스는 휘청거리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판단의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이고, 안 와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서버 한 대를 심사 숙고하여 고민하고 설치, 설정하지만, 대형 호스터/IDC는 랙(Rack) 단위로 구매를 한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과 같은 클라우드 사업자는 컨테이너를 트럭으로 사와서 거기에 물과 전기와 네트워크 선만 꼽는다. 그 컨테이너에는 서버가 2,000대쯤 들어 있다.

규모의 경제란 이런 것이다. 생산성(가용성 및 확장성)에 탄력성을 가져 올 이 규모의 경제를 변동비로 구매하는 일. 여기에 클라우드의 핵심이 있다.

클라우드의 경제학을 더 공부해 보고 싶다면 다음 계산기를 두드려 보자.

Slack 슬랙 : 변화와 재창조를 이끄는 힘

여러분의 부하 직원이 아침부터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 점심 때 느릿느릿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일까?

“어이, 니가 스티브 잡스냐?”라며 뒤통수를 쥐어 박는 상사들이 아직 있다면,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조직에는 스티브 잡스가 없는 것이다.

여유가 없으면 기발한 발상은 나올 리가 없다. 통찰력이 숨쉴 리 없다. 지식 노동은 기본적으로 한방의 게임. 단 하나의 아이디어, 단 한번의 프레젠테이션, 단 하나의 알고리즘. 그러한 순간의 결정타가 시장의 공기를 만들고 대세를 형성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현대자본주의의 대부분의 조직이론은 매트릭스조직, MBO(더 나아가서는 BSC까지) 등을 총동원하여 사실상 분업화를 가속하고 있다. 마케터면 마케터, 개발이면 개발, 영업이면 영업, 총무면 총무. 매우 특화된, 특히나 그 기업의 목적에 특화된 인재, 즉 대체 가능한 재료를 키우는데 집중하고 만다. 기업의 목표에 전조직이 부합하여 성과를 내기 위한 제도들이 단편화 분업화를 가속하고 마는 일은 현대경영론의 치명적 아이러니다. 이 아이러니가 경영자의 고민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그러한 인재는 全人으로서의 소양을 갖추지 못한 채, 회사에서 여하간의 사정으로 분리독립하는 순간, 전인의 소양이 필수적인 창업이라는 정글에서 좌초되곤 하는 것이니, 문제는 그런 우리들이다.

회사 이후의 정글에 티타늄 톱니바퀴는 필요 없는 것이다.

책과는 상관 있을 듯 없을 듯한 이야기를 쓰고 말았는데, 결국 여유(slack)란 어떠한 경우에도 성공의 비결임은 자명한 진리. 경제적 여유든 철학에 입각한 실존적 여유든 여유가 있어야 소신이 있고 소신이 있어야 말도 안 되는 일을 크레이지하게 벌여 볼 수 있는 것. 왜냐하면 대변화의 시대에 해야 하는 일은 핸들을 꺾어야 하는 일. 떨리는 손으로 전임자가 쥐어준 핸들만 부여잡고 어딘지 모르며 조심조심 앞으로 달리는 대다수의 우리네 샐러리맨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정년까지는 절대 갈리 없는 때이른 퇴직뿐이니까.

누군가는 말했다. 가장 강력한 마약은 월급이라고.

내 인생의 만화책

어려서 살던 동네에는 고 길창덕 선생이 살고 있었다. 하교 길에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행여 얼굴이라도 볼까 기웃거렸던 추억이 생각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만화야 말로 가장 보편적인 자아 형성 도구가 아닐까 한다. 만화는 여느 활자 문화보다 가장 짧고 편리하고 강렬하게 보편적으로 공감을 주는 매개물임을, 스스로 그 매개물을 만드는 입장이 되어 보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본서에서도 기술한 길창덕 만화의 한계에는 어른으로서는 공감하지만, 당시의 내가 읽던 그 만화의 세계는 그 자체로서 완벽했다. 그 것이 만화의 무서운 점이리라. 독자를 위한 자체 완결적 세계관을, 매우 짧고 편리하고 강렬하고 보편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지에 따라 ‘내 인생의 만화책’이 될 영광은 주어지는 것이다.

노동운동, 상생인가 공멸인가

이 책의 일차 공격 대상은 어쩌면 아마도 오늘 출근해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대기업이면서 노조가 있고 정규직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업장 근로자가 전체 임금근로자의 6~7%를 차지합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약 110만 명 정도가 됩니다. 그들의 평균 근속년수가 12.4년이고, 월평균 임금이 325만원이며, 신규채용 비율은 6.7% 정도입니다. (중략)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441만 명 정도입니다. 이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1.7년이고, 평균 임금은 120만 원, 그리고 신규채용률은 63.8%입니다. 다시 말해 매년 60% 이상이 직장을 옮긴다는 얘기죠. (중략) 이것이 우리 노동시장의 양극화 실태입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노동운동은 (특히 미래의) 노동자 일반을 대변한다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경력자 채용이 1997년 43%에서 2003년 70%로 늘고 지금은 80%대 수준에 달하고 있는데, 이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청년 실업이 높아지고 있는 겁니다.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30대 대기업과 공기업 금융업 취업자 수는 1997년에는 158만 2,000명이었는데 2004년에는 131만 명으로 7년 동안 27만 2,000명이 감소했습니다.

즉 언제 태어났느냐에 따라 기회가 달라지는 세다간 격차는 더욱 무섭다.

개인적으로 정말 두려운 것은 노동 시장 변화 현상 전체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무신경이다.

비정규직으로 조직의 하층부를 구성하여 절약한 비용으로 현존 연공서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이를 질타하는 이는 드물다. 정치권은 장년층이나 노년층에만 신경이 가 있는데, 그들 스스로 장년층과 노년층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곳이 표밭이기 때문이다. 진보라고 다르지 않는데, 노조라는 기득권층과의 연대도 역시 표밭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설령 기적과 같이 정규직으로 공기업/대기업의 하층부에 들어간다고 한들 허리가 두터워진 비만 조직의 팔다리로 혹사당하다가 연공서열 시스템의 붕괴와 함께 허망해질 수 있는 것이 슬픈 현실.

그것이 미래이자 곧 닥칠 현실이다. 불가역적 세계화와 주기적 금융위기와 그리고 이상계 혁명은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어리광 부릴 틈이 없다. 진보란 미래를 위한 진보여야 하고, 자유주의란 이 미래를 활보하기 위한 모두의 자유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과거의 철밥통에 기웃거리고, 어른들은 아직까지도 땅 파는 일 가지고 싸우면서 세월을 보내는 촌극을 하고 또 전국민은 누워서 이를 멍하니 지켜 보고 있으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기득권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무력화할 고용 유연성은 무엇일지, 또 어떻게 이 바뀐 세계의 새로운 직업관과 기회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지. 요즈음 나의 고민은 온통 이쪽으로 가 있다.

OFF학

주말에 이 책을 읽으면 죄책감과 열등감에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 한 번뿐이라는 절대진리가 뇌리를 스치는 순간,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자립”과 “계획”의 테마는 가끔은 열폭하는 우리에게도 절대 필요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오마에겐이치 답게 노는 것에 대한 생각도 거침없다.

특히 우리와 같이 자녀에게 올인하는 삶의 방식은 부모도 자식도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 대한 일침, 더 나아가 애들방을 없애고 서제를 두라는 점은 묘하게 설득력 있다. 이 것만은 모두 실천하도록 하자.

그러나 주말은 금요일 밤부터 시작하여 일요일 저녁시간으로 끝. 그 이후는 회사 일을 생각하자는 부분에서 또 다시 우울해질 수 있으니 요주의.

프리 ( FREE )

낭비 가능한 비트가 몰고 올 불가역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총서.

폭주중인 ‘무어의 법칙’은
한계 비용을 한없이 0에 가깝게 하며
네트워크 안에서의 생활을 밖의 그것과는 다른 격차를 만들 텐데,
이 것은 어쩌면 기회.
이를 가능하게 할
‘풍요 사고(abundance thinking)’를 하자.

이 것이 본서의 요약.

대표적 실제 사례를 일목요연 분류 나열하며 제시해주고 있지만,
그렇지만 그래서 어떻게 이 프리의 메카니즘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적용할지에 대한 궁극의 결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고 있다.

수많은 기업은 이에 적응하고자 분투중이고, 내가 재직중인 마이크로소프트의 *Spark시리즈도 일례로 소개되어 있다. (창업자웹사이트제작자 중 아직 가입 안 했으면 손해…)

그러나 본서와 같은 신경제식 공짜 역학에만 집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간의 육신의 생활은 이상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이상계조차 현실계의 물리적 요소의 제약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 간과되기 쉽다. 정말 돈이 들어 가는 것은 어쩌면 현실적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말콤 그래드웰이 논박하듯 예컨대 Youtube의 천문학적 회선비는 대표적 예.)

그렇기에 아무리 ‘전술로서의 공짜’(예컨대 교차보조금)가 의미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만능의 경제 법칙은 될 수 없다는 상식을 이 책은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를 반박하는 척하지만 결국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를 이야기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다만 이 책이 공유하고자 하는 희망은 그 비용을 (내가 누구든) 내가 내지 않을 희망이 이제는 있다는 것.

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이 것이 ‘비트 경제와 공짜 가격이 만드는 혁명적 미래, Free’의 본질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