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키워 주셨지만, 
다 자랐다며 난 그 곁을 떠났고, 
늘 그 곳에 계실 테니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엊그제도 그랬다.
아프셔서 찾아 갔지만, 주무시길래 되돌아 나오며,
내일은, 내일은 꼭

“키워 줘서 고마워, 할머니”

라고 하려 했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그날 밤에 떠나셨다.

우리는 찾아 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나신 날에야,
우리는 그 곁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세상의 전부였던 어린 시절을 우리는 가끔 추억하지만,
할머니의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그녀의 전부였다.

그런 것이 가족임을, 그 것을 지키는 것이 삶임을,
할머니는 그렇게 알려주시며 할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

우리는 모두 헤어지고, 되돌아 갈 수 없는 날이 오지만,
이런 고마움을 슬픔 속에서도 느끼게 해줄 수 있기에,
그리고 언젠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다시 만날 수 있다 믿기에,
가족은 그리고 삶은 애틋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Single’s Recipe] gorgonzola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를 요즈음 보고 있다.
의외로 싱글을 응원하는듯하면서 아닌것 같기도 하고 묘한 상념에 빠지게 하는 즐거운 드라마다.

주위에 노총각이 많아서, 특히 제 때 밥도 잘 못챙겨 먹는 노총각 A군의 싱글 생활을 응원하기 위해 오래간만에 Single’s Recipe를 재개해 보고 싶어진다.

오늘은 요즈음 가장 뜨고 있는 치즈. 고르곤촐라(gorgonzola).

한복진, 황건중 지음의 < 해외여행가서 꼭 먹어야 할 음식 130가지>에 의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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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1.0의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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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 독자들도 계시겠지만, 몇 달 전에 developerWorks에 실린 나의 인터뷰 도중, 인터뷰어의 어떤 질문에 나는 무려 약 1분 가량 말문이 막혀버린 일이 있었다. 얼굴 맞대고 앉아 있을 때, 1분은 의외로 길다.

돌이켜 보면 인터뷰어가 미녀라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 같기도 하지만, 실은 정말 말문이 막혔기 때문이다.

질문이란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이었다.
질문을 받은 순간 세기말의 추억이 주마등같이 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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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요즈음 생각하고 있다.

비평을 하고 잘못된 점을 끄집어 내는 것은 오히려 쉽다. 그래서일까, 보통 일기는 자학과 신세타령의 장이 되기 쉽다.

특히 남의 허물은 눈에 더 잘 띄는 법이다. 촌철살인의 필력으로 이를 꼬집어 내어 광장에 걸어 놓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다. 분명 사회의 발전은 그러한 저널리즘에 빚진 바가 크다.

비평을 하고 싶을 때 가끔 생각해 본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잘했을까? 아니라 말하는 것은 쉽다. ‘그래서 어떻게’를 말하는 것이 어렵다.

날카로운 글로 상처를 도려냈다면, 따뜻한 글로 상처를 감싸야 한다.
폭로를 논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전을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부정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긍정을 꿈꾸는 사람이 필요하다.

늘 후자가 되고 싶었다.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요즈음은 블로깅도 두렵다.

The Walking

요즈음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약22km2.2km의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열심히 걸어서 도보로 약 30분. 후반부는 오르막길이라서 땀으로 범벅이 됩니다.

마을버스로는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니 15~20분. 걷는 것이 시간 상으로도 별로 큰 손해가 아닌 것입니다. 신호등도 많고, 정체도 찾아 옵니다.

걷는 이유는,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운동을 할 기회가 없는 현대인에게 이 정도 Walking만으로도 활력이 찾아 오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버스에 수동적으로 앉아 있으면 망상이 들지만, 능동적으로 걷다 보면 열정이 들어 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몸의 세포들도 뇌에 어떤 영향을 주나 봅니다.

이 걷기를 아주 극대화한 사람이 있습니다.

The Fat Man Walking 닷컴.

정말 비장한 일입니다. 샌디에고에서 뉴욕까지 6개월 동안, “to lose weight and regain life”하기 위해…

I can get another car or another property but not another life. That which is most precious is the one thing that cannot be bought for any price…life.

박수를 보냅시다.

에어컨 필터는 적어도 1년에 한번은

이상하게 차만 타면 머리가 아프다는 호소를 듣고, 또 나도 생각해 보니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SSL씨가 에어컨 필터를 갈러 갔더니, “필터 자리에 필터가 없는데요”(원래는 있어야 할 차종)라더라는 허망한 소리가 생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머리가 아프다면, 무언가 공기가 나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필터를 갈아 보기로 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성격이라서, 인터넷에서 ‘은나노항균필터’를 주문하고, 차를 뜯었습니다. 보통 조수석에서 뜯어 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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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검은 물체. 그렇습니다. 원래는 하얗던 필터가 검어진 것은 좋지만, 자세히 보면 자욱하고 바글바글 입체적으로 군집을 형성한 갖가지 동물/식물/미생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장관을 마크로하게 포착하기 위해 폰카 대신 디카를 가지러 갈까 햇습니다만, 역시 육체노동은 별거 아닌 것도 땀이 납니다. 땀이 나면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에어컨 필터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교환합시다. 저 필터의 나이는 도대체 몇살이냐…

5 years

요즈음 5년전을 생각해 보곤 한다. 5년전의 나. 그 때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 때의 나는 내 자신 앞에서 얼마나 떳떳했나…

앞으로 5년 후, 그 때의 내가 지금 오늘 나를 돌아 볼 때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5년 뒤의 나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5년 뒤의 나, 지금의 나를 책망하며 질책할까 두렵다.

“너는 도대체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야…”

한 해 한 해는 가볍고 찰나처럼 보이지만, 이를 5개만 겹쳐서 내 위에 쌓아 보면 큰 부담이 된다.

미래 앞에서 떳떳한 내가 되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할머니와 다마금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

얼마전 마지막 남은 아들을 잃으신 후, 부쩍 먼 산만 보고 계신다.

할머니 옆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리려 애쓰지만, 내가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늘 내가 무언가 배우고 만다. 오늘도 열 몇가지 밥맛이 난다는 밥솥 CF를 보시고, 예전 이야기를 하신다.

‘곡양도’라는 쌀은 참 맛이 없었다. ‘다마금’ ‘조신력’ 이런건 맛이 있었다. 다마금이 제일 맛있다. ‘은방조’ ‘흰베쌀’ 이런거까지 한 댓 종을 심어서 키웠던것 같다. …

어렸을 때.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늘 신기한 과거로의 초대였다. 구한말, 일제시대, 한국전쟁…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를 듣던 풍경들만 기억이 날 뿐,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중한 구전의 역사들… 게으르고 소홀한 손자손녀들 덕에 그 소중한 지혜의 샘은 말라만 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손자손녀의 전화 한통에 하루 종일 신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결국 배우고 느끼며 성장하는 것은 우리들일진데, 옆에 앉아 이야기 하기, 아니 전화 한통하기는 왜 그렇게 힘이 들었던 것일까.

사진

얼마전 93뮤지엄에 걸려 있는 십수장의 사진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George Rose라는 호주 사진가가 100년전에 찍은 이 땅과 이 곳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길벗님의 블로그에 인터넷 공개중)

옛사진은 묘한 흡인력이 있다. 그 공간이 내가 지금 발딛고 있는 곳이라면 더욱 그러하고, 그 등장 인물들이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니 한층 더 그러하다.

사진 가까이 얼굴을 대고 디테일을 살펴본다.

구석구석의 사람들. 풍경들.

“아, 틀림없이 과거는 존재했구나…”

갑자기 밀려 온 현실감 뒤에 일말의 슬픔이 찾아온다. 그들은 곧 밀어 닥칠 격동의 현대사를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던 그 옛날의 풍경이 나를 뒤덮고 있었다.

내 마음의 명곡(1) – どんなときも

시끌벅적했던 80년대가 종언을 맺고 조용한 90년대가 시작할 무렵은 나에게는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다.

그 시절, 전파 월경으로 넘어 오는 일본의 라디오를 듣는 것이 나의 얼마 안되는 취미 중 하나였다. 답답한 현실 탈피를 위해 빈손 도일(渡日)을 꾀했던 시기였기에, 일본어 공부의 일환으로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클릭 몇번으로 양질의 일본어를 생생히 접할 수 있지만, 문호 개방 전인 그 시절은 잡지 구하는 일조차 녹록치 않았기에 그 심야 방송은 참기 힘들 만큼 조악한 음질임에도 불구, 고맙게 시청하곤 했다.

<아무개아무개의 All night nippon~>으로 시작되는 어느날의 규슈발 심야 방송에서 우연히 내 귀를 두드린 하나의 음악은, 당시의 내 처지와 싱크가 되어서일까, 이상하리만큼 온몸에 저며들었다.

마키하라 노리유키(槇原敬之)의 “어떤 때라도(どんなときも)”.

J-POP에 조예가 있는 분들이라면, ‘마키’는 SMAP의 <世界に一つだけの花>등 명곡을 낳은 프로듀서임을 알고 있을 것이지만(사실 나는 엊그제 우연히 튼 NHK-BS에서 방송된 마키하라 노리유키의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처음 알았다…), 그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박박 긁는 시와 같은 가사일 것이다.

단파 라디오도 아닌 일반 라디오로 어떻게 서울의 서부 지역까지 전파가 도달했는지, 지금도 일본 방송이 들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와서 돌아 볼 때 철없는 도피 대신, 가족의 재건을 위해 청년 가장의 길을 매진하게 된 용기 중 일부는 어쩌면 이 노래에서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힘들 때, 거울 앞에서 여전히 웃어 본다. 아직 괜찮아, 라고 얼버무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