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후기] 마르크스와 소셜네트워크

130 [김국현] 트위터, 페이스북, 돌연변이 해방구

한겨레 이코노미 인사이트에 7월호부터 고정 컬럼(IT@econo)이 게재중이다. 지난 달에는 소셜네트워크의 이야기를 마르크스라는 꼭지로 풀어 본 셈이었다. 20대의 나에게 마르크스는 뜨거움을 줬고, 사회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는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노동자 계급이 헤겔의 용어로 치자면 즉자적(an sich)에서 대자적 계급으로 상승할 수 있는 계기로서의 소셜 네트워크를 고려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역사는 계급의식에 눈 뜬 실천적 주체가 만들어 가는 것이고, 또 주체가 주어진 상태를 개혁하는 일이라는 마르크스적 인식에서는 최근 소셜 네트워크를 둘러 싸고 벌어진 여러가지 현상들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차세대 소셜네트워크의 흥망은 이와 같은 고전인문학적 시행착오에서 판가름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끔 경제학적인 의미에서 마르크스를 논하고, 나아가 계급 투쟁 타령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는데, 모두 시대착오. 이 시대의 경제적 교양은 우선 이 시대의 교과서, 즉 맨큐의 경제학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최소한의 지적 합의 위에서 성장이든 분배든 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 지도층은 아무도 마르크스나 아담스미스는 커녕, 이 학부 교과서조차 읽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칼럼후기]새로운 10년, 뒤늦은 근대화로의 초대

[ZDNet칼럼]새로운 10년, 뒤늦은 근대화로의 초대.

ZDNet에 칼럼란에 트랙백을 개설하면 다양한 소통이 있을 것이라고 멋대로 건의해서 기능이 생겼으나 여전히 전반적 무소통 상태. 칼럼의 시대는 가고 있는 것인가.

김국현 칼럼은 최근 비슷한 톤의 연속인데
반복된 송출 속에
순간이라도 같은 파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나리라 믿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를 옥죄고 있는 각종 전근대적 사회주의 정책이 무의미한 이유는

  1. 소비에트적 중앙 관료나 그와 연동된 가신 기업이 미래의 수요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2. 신규 시장 참여자의 등장이 차단되거나 억제됨으로써 다음 세대의 기회를 막고,
  3. 글로벌하게 연결된 가치 교환 시스템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써 권역의 생존에 필요한 다양성 확보에 실패

하여 자멸을 향한 행진을 할 것이라는,…

21세기 미래 예측 따위 모르더라도, 지난 세기말에 합의된 경제학의 상식만 알아도 이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이건만.

2010년 한국. 의외로 고요하다.

[Column] IPTV와 월드가든

[ZDNet]IPTV, 월드가든 2.0

인간 사회에 있어서 맥(脈)과 망(網)이란 본디 닫혀 있다. 마을과 인맥과 같은 전통적 맥과 망도 인간 개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파국으로 치닫는 일을 공동체의 통제로 제어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감정 한 켠에는 문 닫힌 안락함에 의해 보호받고 또 그 네트워크 안에서 인정받고 싶은 여린 마음이 있는 것이다. 개인의 이기심의 고삐를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부족감정이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월드가든이란 마찬가지로 이러한 안락함에 소구하는 정서적 합치점이 있기 때문에 생존하는 것이다.

마치 수많은 핸드폰 CP들이 WAP왕국을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왕국이 과금대행을 통해 수익을 보호해주고 또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IPTV도 그럴지, 컨텐츠 킹 방송3사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한번쯤 생각해 볼 때이다.

[Column] 전파개국론

올해는 컬럼을 쓰기 시작한지 10년이 되는 해.

87년 월간 컴퓨터 학습에 처음 code 투고를 시작한 후,
의견과 견해가 고정 컬럼이라는 형태로 허락된 것은,
(12년이 지난)
99년 1월의 월간 PCLine 권두컬럼.
ZDNet에서 쓰기 시작하기 전, PC잡지 전성기의 오랜 추억이 쌓인 곳이다.

컬럼이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는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잘 들리지 않는 것을 함께 듣는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함께 느끼고 공감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행동할 용기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 것이 글의 보람일 것이다.

요즈음 컬럼이란 쉬운 일이란 생각도 든다.

아무리 주장해도, 한 말 하고 또 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아
같은 말을 또 할 수 있으니…

아,
그건 그렇고
오늘
하고 싶었던 말은,

지난 10년을 감사합니다.

기회를 찾을 수 있다면,
올해는 오프라인에서 작게나마 독자와의 만남도 기획해 보고 싶다.

1월의 컬럼은
[ZDNet] 2009 전파 개국론

[Column] 저작권

[시사IN 51호] 오픈 소스, 공짜 그리고 저작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마지막 문단에서 저작권의 이중성에 대해 적어 놓은 부분인데,
오픈 소스 라이선스도 상용 소프트웨어의 율라(EULA; End User License Agreement)와 마찬가지로(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법적 구속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은 모두에게 큰 기회이지만 생각할 꺼리를 던져 준다.

소비자 기업이 전통적으로 두려워하던 “오픈 소스 폭탄(라이선스 위반으로 똥 밟는 일)”의 걱정은 현실화되고, 오픈 소스를 플랫폼 비즈니스의 지렛대로 삼았던 제공자 기업과 투자가들은 애초에 원했던 속내의 전략을 이제 마음 편히 집행할 수 있다.

상용이든 공짜든 소프트웨어란 지난 30년간 만들어진 인간 창조물 중 최고의 결정체. 소프트웨어란 저작권이 지켜줘야 할 창조물이란 사실이 법의 힘을 받아 인정받자 소비자도 제공자도 투자자도 모두 이 축제를 leverage하려 들게 되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업계에게는 음반업이라는 반면교사가 있고, 스스로가 그들을 위태롭게 한 창조자 자신이기도 하니, 진짜 변화는 이제부터일지 모른다.

[Column] Life streaming

[시사IN 08.08.30] 내 삶의 흔적이 모여서 흘러간다.

온라인에서 삶 관련 유행어가 넘치는 까닭에 대해 적어 본
Life streaming에 대한 글.

대표서비스는 아시다시피 Friendfeed,
개념적 총본산은 http://lifestreamblog.com/ 

그러나 Me2day나 delicious feed를 블로그에 모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life streaming”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유행어 창궐이나 사용상의 짜깁기는
어딘지 모르는 답답함에 기인한 것일텐데,
삶의 OS가 충분히 완성되지 않았으니, 온통 기회와 가능성 투성이다.

아직 이상계는 그 발전 단계가 MS-DOS 상태가 아닐까 한다.
C:\>와 검색창의 입력칸은 인간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무엇이 다를까?

※ 관련하여 최근 Cyworld에서 프로모션 중인 Theme Folder.

[Column] 금융, 공공웹, 그리고 공인인증

[ ZDNet | 김국현의 낭만 IT ] 공인인증체제, 우리에게 임박한 미래로부터의 리스크

사실 조금은 지쳐 있지만, 여전히 다시 희망을 품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한계를 느끼는데다가 벌써 몇 년째 이야기해 온 한국 웹의 구조개혁안은 올해도 별 성과 없이 비록 헛스윙으로 끝날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와 의지로 한국의 웹은 부조리를 털고 일어날 것이라 막연히 믿기에, 애로사항도 있겠지만, 만약 현 체제가 개혁을 향해 마음껏 한번 뛰어 오른다면 이는 곧 모두의 비즈니스 찬스로 이어질 터, 희망을 다시 꿈꾼다.

그리고 어느 곳이나 소장파는 있기에,
연대를 구할 수 있다 믿기에, 
낙심 속에서도 낙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금융과 공공 파트 소장파 여러분,
동의하시는 분 동참 기다립니다.

금융웹 관련하여 인터넷 전문은행을 다룬 시사IN 컬럼 추가.

[시사IN 46호 08.7.29] 클릭 몇 번이면 은행 볼일 ‘뚝딱’

[Column] 무어의 법칙

송고시의 원제는 “무어의 법칙이 구두쇠와 자선가의 법칙이 될 때”였으나, 아무래도 일반인을 대상으로하는 시사 주간지이다보니, 제목이…

[시사IN 08.8.16] 초저가 컴퓨터가 온 세상을 덮는다

노트북을 60만원, 데스크탑을 20만원이면 사다보니…

Computing은 확실히 Disposable, Ubiquitous의 경지로 접어들고 있다. 학생들의 가방마다, 시위대의 옆구리마다…

천공카드를 들고 호스트 앞에 줄 서 있던 시절과,
컴파일한 결과물을 서버에 전개하고 실행하던 시절과,
내 주위에 내 소프트웨어를 실행할 CPU가 10개는 상존하는 시절의

생활은 분명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 양의 충격이 가져 올 변화의 커브에 이제 막 들어 서고 있다.

[Column] 언번들링

IT의 교훈 중 경제학적으로도 바로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Loosely-Coupled와 Module화일 것이다.

Unbundling/Decoupling과 같이 거시적 규제/정책 관점에서도 고려해야 할 시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인데, IT가 어떻게 표준화를 이루고 프로토콜을 정의하며, 경쟁을 촉진하고 이를 시장으로 빚어낼 수 있었는지는 산업 일반에 분명 의미 있는 교훈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IT산업조차도 이 교훈을 따르고 있지 못하니, 오지랍 넓게 경제 전반에 대해 논할 입장은 아니다.

[ZDNet 김국현의 낭만 IT ] 언번들링의 시대

[Column] 정치 2.0

[시사IN 2007.7.19] 촛불 도운 웹이 정치2.0 시대 이루나

미합중국 이전 뉴잉글랜드지방에는 ‘타운 미팅(town meeting)’이라는 직접민주주의가 남아 있었다. 19세기에 접어들어 보스턴시의 인구가 소위 폭발을 시작할 때까지 아테네의 이상은 구현되고 있었다. 물론 오늘날 이러한 ‘인구의 벽’은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한 모든 세계의 그럴듯한 변명거리다. 단 제도적 편익을 취한 대신 부조리가 남았다. 2008년 한국은 그 부조리의 상징이다.

정치가는 스스로 민의라고 믿는 일종의 기준을 생각하곤 한다. 그 기준이란 신념이라기보다 시장에서의 승리를 위한 전략적 임계점과 같은데, 표준편차 그래프의 두툼한 언덕처럼 가장 많은 표를 의미할만한 기준을 잡고 공약을 내놓는다. 이렇게 임의로 선택한 자의적 기준점은 선거를 둘러싸고 이익 단체의 로비력에 따라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는데, 표를 벌크로 거래하여 유리한 정책을 매수하려는 이들, 그리고 경비를 제공하는 대신 직접적 보상을 기대하는 이들이 늘 주위에 상존하는 정치 현상은, 민주주의라는 추상적 믿음이 자본주의라는 구체적 현실에서 구현될 때 겪는 ‘어쩔 수 없음’이다.

그런데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치적 피드백루프’를 우리는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것이 현실의 제약을 리셋하려는 이상계의 본질적 존재 이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