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김국현의 시사IT] 미디어는 어떻게 퇴화하는가?

‘미디어는 어떻게 퇴화하는가?’
는 송고시 원제. 

그 덕에 미디어가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산적한 사회문제로부터는 모두가 눈을 감게 될 수 있었다. 마음 편하고 안락하게. 양질의 미디어를 만드는 일은 귀찮고 힘이 든다. 대신 사회문제는 바보 미디어를 자양분 삼아 마음껏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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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도 마음 편하고 안락했습니다.

[주간경향: 김국현 컬럼] 치킨집이 만만치 않은 이유

세계 정복도 좋지만, 오히려 지금 손에 잡히는 것을 가지고 지금 밟고 서 있는 이 지역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일도 전혀 우습지 않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나와도 어차피 사양산업의 꼬리밖에 되지 못할 바에야, 한 마리 늑대가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한국이 전후 60년간 겪었던 성장의 로또가 또다시 찾아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게다가 그것만이 정답도 아니다. 훨씬 더 많은 세월, 이 땅의 주민들은 각자 고장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지역구의 삶을 살았다.
주간경향 [weekly.khan.co.kr]

송고시 원제목은 “치킨집 차리는 일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

영화 로보캅이 개봉되던 80년대, 
급변하는 시대(일본발 제조업 혁명) 앞에서의 디트로이트(쇠락을 앞둔 미국 제조업)적 정서란
그 영화에 그려진 미래상처럼 우울한 것이었다. 

2015년의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분이 80년대 디트로이트의 젊은이라면 어떤 길을 가야만 했을까? 
Big 3(GM, 크라이슬러, 포드)의 공장(한국이라면 재벌기업/공기업)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것도 인생이었고,
아니면 자본주의의 다음 스테이지(금융과 IT)의 꿈을 찾아 고속버스에 올라 타는 것도 인생이었다.

2015년의 한국, 우리에게 그 길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그 다음 스테이지(금융과 IT)조차 끝물이라면,
이제 우리는 어디를 향해 고속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것일까? 

올해는 이 길에 대한 이야기를 시급히 해보도록 합시다.
 

[미디어오늘: 김국현의 시사IT] 클라우드화하는 고용

한편 한국의 정치와 언론은 자신의 지지기반에 영합해서, 당장의 인기를 살 수 있는 의견만 개진하고 있다. 고용기간을 4년으로 늘린 것을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랍시고 내놔 신분제를 고착하려는 정부 여당도, 모두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판타지를 무책임하게 유포하는 야당도 지금 우리가 직면한 사태의 본질도 심각성도 이해하려 하고 있지 않다.

원래 송고시 제목은 ‘클라우드화하는 고용’. 

기업은 왜 비정규직만 뽑을까요? ‘일물일가’가 무너진 시장에서 싼 물건을 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IKEA가 들어오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과연 북구식 고용관행을 한국에서도 시도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적어도 광명점에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시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파트타임이든 정규직이든 차별이 없다고 합니다. 인재가 학업과 병행하며 파트로 일해도 바로 팀장으로 승진할 수도 있는, 신분제가 없는 나라에서 온 기업이니까요. 

한국에서 한번 정규직에 세이프된 이들은 출산이나 학업 등 인생의 주요한 시점에서도 2등 시민으로 추락할까 두려워 노동 시간조차 조정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가장 문제는 노동생산성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활발한 인력 이동이 일어나지 않아, 사회가 고인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고인 것들처럼 서서히 상해가겠지요. 

우리 모두가 힘든 이유입니다. 




[가비아: 김국현 컬럼] 지금 여러분의 그 프로젝트는 아마도 실패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다른 이를 위해 프로그램을 짜주고 있다면, 그 프로젝트는 아마도 대개 실패할 것이다. 이런 불경스러운 발언이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실패하는 것은 그 프로젝트만이 아니라는 점 덕일 것이다. 특히나 차세대라는 간판 하에 대규모 자본이 투하되어 대규모 인원이 외주로 고용되는 장기간 프로젝트는 거의 실패해 왔고 실패하고 있으며 실패할 것이다.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고 CIO가 업계지에 어찌어찌 나와 인터뷰를 할지도 모른다. 경영 전략에 핵심적인 시스템이 드디어 완공되었다고. 그러나 들어간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지는 명쾌하지 않고, 앞으로 들어가게 될 진짜 비용에 대해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 상태임이 그 어색한 미소에 드러난다. 그 프로젝트는 허황된 일이었음을 본인도 듣는 이도 모두 알고 있지만, 그저 모두 함께 침묵할 뿐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역들은 프로젝트 완료 도장만 찍히면 원대 복귀할 희망에 부풀어 있는 을, 이 성과를 발판 삼아 더 높은 연봉과 직위로 점프하기를 희망하는 갑. 또는 애초에 이 프로젝트의 목적 따위 별 관심이 없는 일용직들. 모두 굳이 나서서 이견을 제시할 이유가 없다. 프로젝트 덕에 그 회사의 비용은 천천히 늘어날 것이며, 대응능력은 어느 날 툭 떨어져 버리고 경쟁력은 가랑비 옷 젖듯이 서서히 저하되어 있을 것이다. 모두들 그 전에 자신은 그 곳을 떠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주와 오너와 그 기업의 소비자만 모를 뿐이다.

그런데 그나마 이런 인터뷰라도 하려면 프로그램이 돌아는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업체들의 거하게 망한 이야기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풍문을 넘어 기사화마저 되어 돌기 시작한다. 특히나 유행을 좇아 멀쩡한 시스템을 들러 엎기 시작한 이들이 그 비용과 복잡성의 부메랑을 얻어맞은 이야기가 극적이고 흥미롭다.

수천억을 말아 먹는 일은 있어도 혁신적인 모험은 차세대 기간 동안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차세대의 단골 무대라 할 수 있는 금융권에서 미래를 위해 걱정해야 할 것은 주전산기 안의 코볼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클라우드에 촉발된 알리페이나 비트코인 등 미래의 금융 모델, 그러니까 차세대 프로젝트 시작시점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들일 것이다. 이처럼 혁신이란 IT든 아니든 모든 기획된 차세대프로젝트에서 벌어질 수 없는 종류의 일이기 때문이다.

차세대라는 말을 자신 있게 붙이는 순간, 그 프로젝트란 지난하고 지루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해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을 정도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개선 작업으로 약속되었음을 의미한다. 허나 다음 세대란 이렇게 안정과 예측이 전제가 된 조율된 상황 하에서 찾아오지는 않는다. 소위 차세대 프로젝트가 성공해도 결국은 실패가 되는 딜레마는 바로 이 때문이다.

포장은 했으나 속으로 곪은 이들 프로젝트들은 결국 조직을 병들게 하고, 병든 그 기업은 시장에 의해 또 다른 도전자에게 대체된다. 이 도전자들은 정말 다음 세대를 읽을 수 있었기에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니, 누군가의 실패란 거시적으로 볼 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 생각되기도 한다.

“생산적인 프로젝트와 팀을 이뤄내는 법”컴퓨터 분야에서 『피플웨어』만큼이나 소프트웨어 관리에 심오한 영향을 준 책도 드물다. 1987년 처음 출간된 이래로 지금까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사랑받고 있는 이 책의 독특한 통찰력은 소프트웨어 개발의 주요 쟁점이 기술이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면 성공…
피플웨어 [blog.yes24.com]

 

생각해 보면 근래 성장한 기업들은 모두 하나 같이 소프트웨어의 힘에 의해 성장했다. 마치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질 수 있는 회사에만 혁신이 숨 쉴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프트웨어는 욕망의 덩어리다. 혁신은 어쩌면 그 부산물이다. 더 재미있게, 더 멋지게, 더 효과적으로, 그래서 나와 나의 제품이 더 두드러지게끔 하고 싶은 욕망. 창조의 기쁨과 발견의 쾌감. 그 욕망이 손끝에서 마법을 부린다. 모든 프로그래밍이란 결국은 욕망을 향한 해킹인 셈이다.

따라서 프로그래머라는 개인의 욕망을 도외시한 채 의무만을 이야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안타깝게도 그 끝이 뻔하다. 그 일종의 집단주의적 노동은 다른 산업 노동과는 달리 컨베이어벨트의 중간 산출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 올라가는 건물의 골조를 보며 뿌듯해 할 수도 없다. 마음먹으면 하루면 끝날 일, 한 달을 끌어도 그럴듯한 일정표가 나온다.

마음먹는 일이란 곧 해킹의 정신. 지금까지의 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전혀 새로운 제안을 하는 용기. 많은 차세대 프로젝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바쳐야만 하는 주간 보고와 업무일지는 가던 길을 그냥 가자 속삭이기 때문이다. 괜히 나서서 시끄럽게 하느니, 적당히 힘조절하여 공수를 조절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단기적으로 이익이다.

그 맹목적 행진이 도저히 유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문외한의 눈에도 그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 소문은 퍼지고 취재 기자는 찾아온다. 그리하여 아무리 자본과 인력이 추가 투하되어도 더 이상 수습할 수는 없는 경지에 도달해야 이 무의미했던 차세대의 행진은 멈추게 된다. 대개 타력에 의해.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

해산된 프로젝트의 씁쓸한 추억과 함께 모두들 어디론가 흩어질 것이다. 그 자리에는 낮아진 경쟁력, 사라진 주주 이익, IT에 대한 환멸, 더불어 피폐해지는 개발자의 삶 만을 남긴 채, 모두들 어디론가 안개처럼 스러져 가는 것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세계를 먹어치운 이래 이 체제가 기능하지 않게 되는데, 여기에는 복합적 이유가 있다.
이 파란만장한 무용담은 수많은 교훈을 담고 있지만, 이 스토리의 본질은 한 줄로 요약된다.

1초 메모, 소개합니다.

1초 메모를 소개합니다. 

글이든 말이든 결국은 아이디어로 가치를 만들고 그 대가로 우리는 생활하고 발전합니다. 
기획도 발상도 모두 이 활동에서 비롯됩니다. 

일전에 ‘스마트워크‘에 아래와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2초만의 메모 태세란 이 심리적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늘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2초 만에 메모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의 휘발성은 너무나 강력해서 조금 이따 메모해야지 하고 돌아서는 순간 증발해버릴 수도 있다. 가끔 인식의 천장에 맺혀 있다가 다시 떨어지는 행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요행을 바라기에는 너무나 주옥 같았으나 날아가버리고 말라붙은 자국만 남은 아이디어가 참으로 많다.

저도 제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2초만의 메모 태세를 갖춰 왔는데, 1초로 줄여 보기 위해서 앱을 고안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1초 메모는 스스로 쓰기 위해 만든 앱입니다만, 모두에게도 유용하리라 믿게 되어 공개합니다. 

1초만에 메모 시작!, 쓰고, 담아두고, 반추한 후 버리고…

화면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클라우드의 아이디어 주머니(OneNote나 Evernote)를 애용하시는 분은, 가장 빨리 무언가 메모해서 노트 클라우드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 느끼실거에요. 

우리는 하루에 몇자나 메모하는지 한번 측정해 봅시다. 
1일 1천자, 
아이디어가 있는 삶을 향해. 

[가비아: 김국현 컬럼] 중소, 중견기업이 빅데이터 트렌드로부터 챙겨야 할 것들.

인터넷 인프라 솔루션 기업 가비아와 함께 하고 있는 컬럼, 여기에도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소, 중견기업이 빅데이터 트렌드로부터 챙겨야 할 것들.

 

빅데이터란 단어가 꽤나 유행하고 있다.
이 단어만 붙으면 마치 미래를 바로 예측해 버리고, 고객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 그래서 그런지 특히나 경영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귀한 단어로 등극했다.

 

그렇지만 빅데이터를 학습하면 학습할수록,
이 물건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 생각 또한 들고 만다. 등장하는
사례들은 보통 수십
, 수백 대의 서버를 분산 연결하고, 이 위에 숙련된
개발자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프로그래밍을 능수능란하게 해서 만들어진 것
. 하둡이니 맵리듀스니 이해하기 힘든
기술만 잔뜩 등장한다
. 이렇게 인력과 장비 동원이 가능한 곳은 모두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초거대 기업들 정도다.
아직 여력이 없는 작은 기업 종사자라면, 빅데이터의 사례들과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져
약간 우울해질 수도 있다
.

 

그런데 별로 우울해 할 필요가 없다.
빅데이터의은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가
숨쉴틈 없이 쏟아져 들어와 거대하게 쌓이는 이미지이지만
, 사실 이런 초거대 데이터 없이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빅데이터가 빅데이터의 트렌드를 만들 정도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오히려보다는데이터의 힘이다. 데이터에 근거한 경영 판단 및 사업
전략을 취했더니 성공할 수 있었다
. 이것이 본질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오히려 지금 중요한 것은 작은 데이터라도 소중히 여기는 전략이다
.

 

물론 모든 데이터를 풍족하게 모으고
모아 전부다 전수
(全數)조사할 수 있는 잉여의 시대에 접어든 것은 충격적이지만,
온 세상 모든 비즈니스에게 그 잉여의 시대가 찾아온 것은 아니다. 일반 기업에게는
도대체 무엇이 전수조사일까
? 인터넷 기업이야 모든 데이터 트래픽을 다 잡아두겠다는 호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 기업에게는 고객의 움직임을 전부다 모으겠다는 욕망은 곧 비용이 된다. 오히려
적당한 샘플로 적절히 취한 데이터만으로도 통계적으로 충분히 유의미할 수도 있다
. 지금까지는 아예 이러한 데이터에
근거한 기획이 없었던 것이 문제이지
, 데이터가 작어서 문제인 것은 아니다. 또한 이미 기업 내외부에는은 아니라도 적당한 데이터는
얼마든지 있다
. 이 데이터에서 해석해야 할 지표를 찾는 것, 그러니까
데이터중 무엇이 어떤 관계하에서 기업의 이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지
, 이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
.

 

즉 많은 기업에게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하둡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 이미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엑셀로 회귀분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엑셀은 이미 파워 피봇 등 다양한 데이터원으로부터 대량 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데이터 분석 기능도 충분하니, 내친김에
진짜 빅데이터의 세계에 뛰어들 수도 있다
. 빅데이터 트렌드 덕분에 우리에게 익숙한 도구들은 더욱 더 좋아지고
있다
.

 

빅데이터 트렌드는 이와 같이 그 성공
사례로부터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주고 있는데
, 이 중에서 각자의 실상에 맞는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 특히 NoSQL 솔루션 정도는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하둡을 쓰지 않고 간편히 설치할 수 있는 기술들도 있는데, 기존 데이터베이스는 처리하기
힘들거나 적합하지 않은 다양한 안건을 색다른 각도에서 공략할 수 있다
. 게다가 대부분 오픈소스라 상용 데이터베이스처럼
라이센스비가 들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 테이블 설계도 하지 않고, API로 간단히 조작하는 가벼운 업무를 만들 때, 또는 실시간으로 대규모 처리가 일어날 때,
중소 중견 기업도 의외로 쓸만한 것이 NoSQL 제품들이다. 실제로 대기업들이 빅데이터 기술을 확보하는 이유 중 하나로, 상용 데이터베이스 종속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숨은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다
.

 

또한 빅데이터 사례 중에는 외부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 고객 니즈의 360도 전체상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회사 이외의 데이터도 적극 활용하자는 것인데
, 공공 데이터 등 작지만 의미 있는 데이터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큰 데이터가 아니라, 작아도 유의미한 데이터들이라고 생각하면 수집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아진다
.

 

오늘도 빅데이터 트렌드는 수많은 데이터와
기술들을 쏟아내고 있다
. ①이미 여러분이 쓰고 있는 도구, ②비교적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 그리고아직 여러분이 신경 쓰지
않았던 데이터가
통계학에 기반한 기획과 만난다면, 여느 빅데이터 사례 부럽지 않은 여러분만의 데이터 중심 경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경영도
인생도 제약 조건하에서의 취사선택이지 않은가
, 빅데이터 유행은 이를 다시금 알려주고 있다.

컨텍스트의 시대

컨텍스트의 시대. 

생각해 보면, 웹이란 결국은 컨텐트의 시대였다. 
그 증명은 거대한 컨텐트 잡지로 변한 네이버였다. 거대한 게시판으로 변한 페이스북이었다. 

Content Is King – Bill Gates (1/3/1996)
Content Is King by Bill Gates [www.craigbailey.net]

그가 이 말을 한 후로, 거의 20년이 지났다. King도 바뀌는 것이 당연한 세월이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IT 기술 블로거 로버트 스코블과 소셜 미디어의 파워를 예측한 컨설턴트 셸 이스라엘이 다시 만났다. 그들이 들려주는 다가올 미래, 아니 이미 우리 앞에 닥친 ‘컨텍스트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인간의 삶을 바꿀 다섯 요소에 대한 통찰, 나보나 나를 더 잘 아는 데이터와 센서가 지배하는 시대-컨텍스트의 시대를 이 책을 통해 먼저 경험할 수 있…
컨텍스트의 시대 [blog.yes24.com]

모바일이 스마트가 이 시대의 새로운 키워드가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웹을 만든 온라인과 인터넷의 정신은 현실마저 바꾸고 있다. 
컨텍스트란 바로 그 접점의 다른 이름이다. 
나를 둘러싼, 내가 놓인 처지를 이해하고 이를 계산하여 최적의 컨텐츠를 현실에서도 제공한다. 
눈치 빠른 서비스는 알아서 모든 것을 처리한다. 촌스럽게 검색질의를 받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동차도 알아서 운전하겠다 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끊임없이 찬미하고 있는 구글은 앞으로 내가 무엇을 묻지 않아도 결론을 말해주는 것을 꿈꾸고 있다. 대신 그 조건으로 우리의 일상을 다 흡수할 것이고, 그 흡수 도구도 몸에 장착하기를 원한다. 웨어러블은 그 징조다. 

이 세상에는 늘 컨텍스트가 있었다. 대화의 맥락에, 스토리텔링의 구조에, 그리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부여되기도 했다. 
모든 사물에 “북유럽풍”을 붙여 보자, 그러면 갑자기 이 사물은 새로운 컨텍스트를 갖고, 그 자체도 달리 보이는 착각을 느낀다.
북유럽풍의 행주, 북유럽풍의 셔츠, 북유럽풍의 자전거… 
이것이 컨텍스트의 마법이다. 마케팅이란 결국, 이러한 환상 유지 장치일 뿐이다. 

그런데 앞으로의 기업은 나의 컨텍스트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원하는 컨텍스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격차를 계산해낼 수 있다. 사람들이 이런 흐름에 행여 불편해 하는 것은 그렇게 공개된 격차와, 그 격차에 매겨질 가격이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멋진 신세계가 찾아 오고 있다. 

슬픔을 가슴에 묻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이유

벌써 3년전이 된 3.11 일본 대지진. 그 후 한 일본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절망적 사고는 큰 아픔이지만 어쩌면 이 나라의 젊은 세대를 깨우는 일을 하리라고. 
어른들의 기득권에 맡겨 둔 국가, 그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금, 세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우리의 4월이 그 3월에 비슷해 보였다. 
행정과 정치는 온갖 변명 속에 속수무책 우왕좌왕했으며, 
면피를 위한 기자회견부터 무의미한 현장방문까지 ‘퍼포먼스’에 매진하며 
어떻게 하면 선거민들에게 자신의 입장이 그럴듯하게 보일지 분주했다. 

대자연의 재해과 테러와 같은 가공할 두려움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지만
평온에 감춰진 기득권의 민낯을 드러내게 한다. 
사람들의 무력감과 상실감은 그 져버린 신뢰와 실망의 크기가 된다. 
일본도 미국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의 4월은  …
재해도 테러도 아닌, 너무 저질이고 너무 찌질해서 너무도 끔찍했다. 

진원지와 적은 어디인가…, 드러난 이들은 수가 뻔히 보이는 둔갑만 계속 한다. 
너무나도 많은 공범이 있으며, 최종보스라고 생각했던 이 뒤에는 또 다른 배후가 있다. 
양파껍질은 끝도 없이 떨어져 나간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태연자약 벌어지고 그것이 당연시 되어 온 세상, 그런 곳이 실재하고 있었던 것에 소름이 돋는다. 
그 곳은 대한민국.
정부든, 정당이든, 회사든, 종교든, 심지어 배 한척이든 한줌의 조직이라도 그 키를 잡은 인간군상들의 적나라하게 드러난 본성을 목도한 이상,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슬픔을 가슴에 묻고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드러나지 않은 곳은, 드러날 리 없는 곳은 도대체 어떤 아수라일까. 왜 늘 사람이 죽어야만 그리고 국민의 공분이 있어야만, 무언가 겨우 밝혀지는 것인가.

절대로 리더가 되서는 안되는 수준의 사람들이 리더를 하고 있고,
이들의 완장과 자리와 이권을 보전하기 위해 짬짜미가 횡행하고,
그 조직의 소속원들은 
영혼을 잃은 채 
“에이, 이번에도 하던 대로 하고, 다음부터 원칙대로 합시다.”
“역시… 그럴까요?”
“그럼 당연하지, 왜 이래 사람이 순진해가지고, 샌님처럼.”
“하지만…”
“그럼, 그게 관행이야. 그리고 그래야지 조직도 살고 윗선에도 무리가 안가. 다 그렇게 되어 있는거야. “

사회 곳곳 온통 세월호로 가득한 대한민국. 어느새 그 난파선의 공범 승무원이 되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국민들은 가족과 사회와 다음 세대라는 승객들이 눈에 밟혀, 
좀처럼 슬픔을 가슴에 묻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것이다. 

오늘의 아픔이 이 난파선에 울리는 알람이 되어야만…
그것이 이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일텐데…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 일본인이 한 말을 깨닫고 있다. 

[김국현의 논점] 왜 공인인증서는 사라지지 않는가? – 공인인증서가 상징하는 것

공인인증서는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zetlos Sean Shin @zetlos

공인인증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규제를 푼다고. 안 믿슴다.

공인인증서가 쓰기 불편하다거나 혹은 오히려 보안에 취약했다는 논리도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명제란 실제 다른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의외로 절대적 입증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입증의 권한은 전문가에 위임되고 그 전문가는 정부가 선정한다. 이른바 어용(御用)의 구조다. 허나 실제로 ‘더럽고 귀찮은’ 국지적 특이성 덕에 해킹을 안한 글로벌 해커가 한 명이라도 존재했다면, 이 제도는 그 기능을 다 했다 주장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논쟁의 평행선은 10년 넘게 지속중이다.

그런데 이런 예를 들어 보자. 집집마다 300kg의 강철문을 달기로 했다고 하자. 목재는 언감생심, 알루미늄도 안되고, 300kg보다 모자라서도 안된다. 모든 집에는 300kg의 강철문을! 실제로 300kg의 위압감은 도둑을 귀찮게 했을 수도 있다. “하하하, 어느 누구도 현관으로 들어 올 수는 없었어!” 라며 철강회사와 창호회사와 규제당국은 기뻐했지만, 이미 도둑들은 다른 창문으로 넘어 다니고 있었고, 300kg의 무게 덕에 건물의 구조는 뒤틀리고 있었으며, 문을 달기 부담되어 신축건물도 생기지 않게 되었다. 미장원을 개업하려 했더니 300kg 철문 설치공문이 온다. 당국은 300kg의 산업이 일군 철생산량만 홍보하기 바쁘고, 그 덕에 사라진 기회의 가치와 분산된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취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아무도 열고 싶지 않은 300kg의 철문이 달린 오래된 유령 건물만이 남아 있게 된다.
  
모든 효과에는 비용이 있다. 그러나 어떤 효과만이 절대적 가치로 선언되고, 그 비용은 계산되지 않는다. 이 부조리가 한국 사회에서 수시로 목격되고 있다. 공인인증서 문제는 사실 이 부조리의 플랫폼, 관제담합의 상징인 것이다.

각 중앙부처는 관할하에 산하단체를 두고, 이들을 사실상 독점 하청 상태로 운영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시 관변의 민간 업체가 하도급으로 배치되며 다시 이를 굳히는 아교풀처럼 어용 교수들이 논리를 강화해준다. 그리고 이 굳어 버린 담합의 구조는 관료 자신의 자리를 지켜줄 보루이며 후일 낙하산이 착륙할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공인인증서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비용대 효과를 도외시한 규제로 300kg 철문을 사회 곳곳에 찍어내는 구태의연이 세금과 공복에 의해 온존하며, 새로운 혁신은 물론 기존의 시민 생활을 방해하고 있지만 이를 10년 이상 자신있게 방치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관치사회주의적 성향에 있는 것이다. 

[김국현의 논점] 왜 우리는 오늘도 야근을 하는가?

한국은 그 낮은 생산성과 긴 야근으로 유명하다. 

OECD 평균을 420시간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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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근로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1년 기준 29.75달러로 OECD 평균(44.56달러)의 65.5% 수준에 불과

왜 그런데 우리는 오늘도 또 야근을 하는가? 물론 어느나라보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전후로 하여 쾌적하고 느슨한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고, 또 정직원의 야근수당이 탐나서 엉덩이가 무거워졌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는 정말 바빠서 야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짜로 밤이 되도 일이란 것이 끝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나의 일이란 끝나지 않는 것이기에 적당히 끊고 가는 수 밖에 없고, 집에 와서도 적당히 잘라낸 일이 마음에 걸린다. 이 찝찝함이 심해지면 주말에도 출근하게 된다.
때로는 자발적으로.
그렇게 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퇴사하는 날까지. 
 
그 주범은 무엇일까?

기업의 가족 주의적 문화는 손쉬운 용의자다. 원래 가족이란 서로에 대해 무한의 책임을 갖는다. 쩔쩔매고 있는 동생이 있다면 형이 나서는 것이고, 형은 기꺼이 동생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기도 한다. 한국 대기업의 사훈에 대개 가족을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등장하는 이유이다.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며, 가족이 나를 버리는 일이란 것은 차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혈연이 아닌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에 대한 충성을 결의할 무언가를 서로 확인해야만 한다. 

단체기합, 철야행군, 극기훈련 등은 기본소양 교육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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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종 금융사고에서 한 발 빗껴 있는 신한은행은 신한만의 조직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기업 문화는 호모소셜한 집단을 형성하게 되고, 급기야 JD(Job Description)를 필요로 하지 않는 채용 문화, 예컨대 공채라는 풍토를 만들어 낸다. 내가 무슨 일을 하러 이 회사에 들어 가는지 알지 못하고 들어 가는 것이며, 사측도 일단 가족의 자격이 되는 이들을 받아 들이고, 이들이 무슨 인재로 커 갈지 두근두근 모르는 상태가 된다. 이 미묘한 의형제적 관계의 긴장감은 ‘자기 일 끝났다고 집에 가는’ 일을 본질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 회사에 들어 올 때의 계약이란, JD에 의한 쌍무적 계약이라기보다도 “가족적 무한 책임”하에 소속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구에도 스타트업이나 ‘파트너’ 등 이와 같은 ‘가족적 무한 책임’과 ‘주인 의식’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진짜 파트너이자 진짜 주인인 경우다. 한국의 특수성이란 그 많은 임직원이 주인도 아니고 파트너도 아니지만 의식만큼은 이에 걸맞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가족적 무한 책임은 계열 기업집단으로 확장되며 촘촘한 끼리끼리 하도급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 가족이 되지 못한 이들, 적자가 아닌 서자(비정규직)들은 더 없이 살기 힘든 특수성을 지닌 사회를 만들게 된다. 

사실, 되지도 않는 전문성을 가지고 저녁내내 끙끙대느니 그 때 그 때 전문가를 고용하고 해고하면 되지만 구조상 쉽지가 않다.
비용은 정직원 채용과 내부 거래 프로젝트용으로 충당되다 보니 혼자 밤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끼리끼리 다단계 하도급은 흥하지만 역으로 B2B 직거래 서비스업은 흥하지 못해, 기대했던 ‘낙수효과’도 잘 보이지 않고, 사회에 축적되는 전문성은 떨어진다. 

그런데 한반도의 역사에 있어 한국인이 과연 이러한 인위적 가족 집단을 만드는데 탁월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조사해 봐야겠지만 지극히 20세기적인 일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서구적 시민사회식 근대화를 거치지 않고 자본주의로 급이행한 시기의 기억이 21세기의 지금까지 잔존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운 일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여러분의 야근이 위와 같은 이유에서 한국 경제의 혈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여러분이 오늘 야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 또한 아니라는 점이 씁쓸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