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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7 [낭만오피스] 스마트폰 (3)
- 2009/11/26 출발 3%
- 2009/11/24 야성적 충동
- 2009/11/20 미투데이로 한마디, 트위터로 한마디 (Tweet this, Me2day this) (5)
- 2009/11/20 [낭만오피스] 금요일 (3)
- 2009/11/18 능률적인 프로그래머 (2)
- 2009/11/17 괴물의 탄생 (1)
- 2009/11/16 [낭만오피스] 칭찬 (3)
- 2009/11/13 Garage Server (5)
저자는 오세훈, 강금실과 싸웠던 서울시장후보로, 정동영, 정몽준과 싸웠던 동작을 후보로 기억되는 현 진보신당 대변인 김종철. 책이름은 당시의 득표율. 진보진영의 젊은 기수로 촉망 받았지만, 그가 이륙하기에 서울시도 동작구도 평평한 활주로는 아니었다. 본서는 그 비행 시도 자체보다는 그가 왜 그 시도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젊은 날의 후일담이다.
젊은 날이라… 그와 나는 같은 직장에서 같은 세월을 보냈다. 서울대 학생운동의 주력부대가 설립한 나눔기술에 어찌어찌 인맥으로 동참하여 말단 생활을 하며 90년대를 보낸 셈인데, 내가 그 간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첫 직장에서 배웠다.”며 작은 기업 예찬론에 빠져 있던 반면, 그는 이 책에서 “죽는 줄 알았다.”라는 촌철살인으로 그 치열했지만 그만큼 어려웠던 시절을 정리해 버린다.
촌철살인. 출마 당시의 그를 기억한다면, TV토론에서의 그의 모습, 그의 언행, 그리고 간간히 보였던 그의 진정성 모두, 함께 IT의 현장에서 굴렀던 내 눈에 비치던 그의 모습 그대로다. 변함 없고 올곧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그는 ‘노무현을 넘어선 노무현’을 꿈꾼 ‘소년 장수’다. 그러나 역시 그의 말처럼 정책 결정권자가 된 이후로는 보통사람들이 염원했던 노무현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에 그가 그의 인생을 걸고 풀어내야 할 숙제가 있다. 참됨과 진정성의 리더를 넘어, 진정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지닌 리더.
그는 이제 학생운동의 시대를 이끌고 관통했던 그 추억을 이 책을 마지막으로 버려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의 지구상의 리더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국민의 자유, 그리고 이에 입각한 경제의 효율성이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꿈꿨던 보편적 행복은 계획 경제나 평등 주의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도 여러 번 언급한 ‘97%가 행복하다 말하는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의 복지도 결국은 그 국가가 향유하고 있는 고도의 경제적 효율성과 국민의 자유에 기인한다. 북유럽이 북유럽일 수 있었던 것은 이 효율적 자유에 입각한 고도의 생산성 잉여와 분배 우선 조세 정책이 맞아 떨어진 결과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들은 정책적으로 케인즈주의의 한계를 인지하고 과감하게 자본의 적자 생존과 세이프티넷에 의한 노동 유연성을 드라이브했다. 정부는 유능하고 엄격한 심판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지향점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를 이야기한 점은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이제 와서 NL이니 PD니 더 나아가 마르크스 경제학의 낭만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오히려 결국은 그렇게 걱정하던 ‘소년 장수 증후군’을 야기할 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어둠을 비출 진정한 진보를 원한다. 진보란 과거를 추억하는 행진이 아니다. 오히려 참여, 개방, 공유라는 웹2.0의 식상한 슬로건이 더 진보적이다. 지금도 비트를 타고 수 없는 에너지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다. 진보란 이들로부터 연대를 이끌고 대오를 형성하는 일일 것이다. 말 그대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21세기적 연대를 위해 다시 서기를 바랄 뿐이다.
난 우리가 덴마크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안델센과 Jacob Jensen이 나올 수 없었던 근현대 사회였기 때문이라는 농담을 한다. 오히려 김종철이 해야 할 투쟁은, 그의 ‘사람은 섞여야 산다’는 교육철학,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의견 등에서 읽을 수 있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갈망과 그로 인해 이륙될 수 있는 사회와 경제의 효율화를 모색하는 일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경제를 움직여 온 숨은 요인을 이해하기 위해 본서 1장의 제목만 외워 두어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행동경제학적인, 즉 현 사태에 대한 심리적 동인을 읊을 때는 매우 유용한 개념들이다.
Confidence(multiplier), Fairness, Corruption, Money Illusion, Stories
합리적 기대와 효율적 시장은 이상 다섯 가지와 같은 매우 정성적이지만 계량 가능할지도 모르는 심리적 변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신뢰와 자신감이 있고 없음의 차이, 임금과 가격에서 Fair하다는 느낌의 중요성, 시장에 있어서의 부패가 미치는 영향, 화폐의 가치 척도 기능은 물가 상승률 앞에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는 상식, 경제도 결국은 스토리 텔링이라는 차디찬 각성까지.
즉 이러한 야성적 충동이 분명 거시 경제에 영향을 미침을 굳이 이 노벨상 수상자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주위를 둘러 보면 인지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야성적 충동은 때로는 긍정적 피드백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본서는 도요타의 설립을 ‘산업적 만용의 승리’로 평가한다.
"기업, 정주영ㆍ이병철처럼 투자해야" 케인시안 정운찬의 쓴소리 … "야성적충동 부족하다"
아마도 정운찬은 이러한 산업적 만용이 오늘 재연되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러한 판단과 결단은 기업의 몫이다. 야성적 충동에 관해서라면, 정부는 여기서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제도설계자로 등장해야 한다. 오늘날 이는 케인즈파든 하이에크파든 경제학자라면 최소한의 합의다.
이렇게 야성적 충동이 작용하는 세계는 정부가 개입할 여지를 제공한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야성적 충동이 공공선을 위해 창의적으로 발휘되도록 통제받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는 경기의 규칙을 정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이 아닌 정부가 과다 분비하고 있는 작금의 야성적 충동에 대해 정총리는 학자적 양심을 걸고 개입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의무로서의 자신감’을 우리 시민들은 과감히 갖게 될 것이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장은 그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블로그 사이트와 RSS feed에 약간이나마 소셜 네트워크 친화적 소도구를 가미해보자.
본 블로그도 RSS로 본문을 읽을 때와 사이트에서 읽을 때 서로 약간 다르지만, 본문 하단에 작은 변화가 있다.
블로그에서의 피드백과 소통은 어느새 댓글과 트랙백에서 트위터/미투데이의 SNS로 어느 정도 이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즉 하나의 표현에 대한 의견과 반응과 공감과 반감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확산하게 되는데, 컨텐츠 생산자의 입장에서도 그 물꼬를 마련해 주는 친절함을 보여도 멋있을 시절이다.
[RSS Feed에서] Tweet this, Me2day this.
RSS의 통계 정보를 알 수 있기에 유용한 Feedburner에는 Feedflare라고 하여 각 feed하단에 다른 링크를 넣을 수 있는 XML 얼개가 있는데, 여기에 트위터와 미투데이에 바로 의견을 남길 수 있는 링크를 만들어 봤다. 아래 두 URL을 빈 칸에 입력하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 Me2day this: http://goodhyun.com/attachment/cfile30.uf@19503D234B0408F74DAEC9.xml
- Tweet this: http://goodhyun.com/attachment/cfile23.uf@12360C234B0409007B4518.xml
(이미 twitthis.com의 서비스를 하여 short URL化할 수 있는 feedflare인 twit this가 catalog에는 있었으나 본 블로그의 URL은 short URL만큼이나 짧고 바로 twitter에서 쓰는 것을 선호하는 관계로…)
[포스팅에서] 미투데이로 한마디, 트위터로 한마디
위의 feedburner에는 포스팅에서도 feedflare를 붙일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괜히 다른 방법을 시도해 봤다.
각 블로그 스킨에 다음과 같은 식의 태그 뭉치를 적절하게 배치하면 된다.
아이콘 따로 만들기 귀찮으면 아래 코드를 그냥 가져다 붙이면 OK.
티스토리계열 & no-popup
(단 아래 도메인 명과 [는 [로 바꿔주세요..)
<a href="http://me2day.net/posts/new?new_post[body]="[##_article_rep_title_##]":http://goodhyun.com[##_article_rep_link_##]" ><img src="http://cfile26.uf.tistory.com/image/19042C144B055621817910" alt="미투데이로 한마디" height="32" width="80" border="0"/></a><a href="http://twitter.com/home?status=[##_article_rep_title_##] http://goodhyun.com[##_article_rep_link_##]"><img src="http://cfile25.uf.tistory.com/image/20042C144B05562182A0CD" alt="트위터로 한마디" height="32" width="80" border="0"/></a>
범용 & popup
<a title="미투데이로 한마디" onclick="window.open('http://me2day.net/posts/new?new_post[body]="' + document.title + '":' + location);" href="#" ><img src="http://cfile26.uf.tistory.com/image/19042C144B055621817910" alt="미투데이로 한마디" height="32" width="80" border="0"/></a><a title="트위터로 한마디" onclick="window.open('http://twitter.com/home?status=' + document.title + ' ' + location);" href="#"><img src="http://cfile25.uf.tistory.com/image/20042C144B05562182A0CD" alt="트위터로 한마디" height="32" width="80" border="0"/></a>
(이미 더 간단한 방법으로는 Tweetmeme의 버튼을 붙이는 것이 있으나, 역시 중간자 없는 것을 선호하고 또 미투데이와 함께 위화감 없이 배열하고 싶기에…)
완성!
블로그는 지지 않아.
가끔 내공이 남다른 프로그래머를 만날 때가 있다. 내공의 일차적 표출 장면은 그가 아마 'Polyglot'일 때일 테지만, 내공이 증명되는 순간은 그가 직능인으로서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느낄 때다. 이 상황 통제력이란 즉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런 처지에서 과업이 자신에게 주어졌으며 이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지 알아야 가능한 일이기에…
주어진 과제를 푸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은 하나하나 그냥 부대끼며 풀어 가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단순 반복작업을 손수 하다 보면 멍청해지고, (본서가 주장하는) 가장 능률적 자산인 'Focus'를 놓치게 된다. '모든 수행작업을 배시 스크립트로 남기는' 꼼꼼함이야 따라할 수 없겠지만 가끔은 단순 반복적 업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Automation'하는 자만이 결국은 궁극적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능률 이전에 프로그래밍이 단순 노무가 아님을 드러내는 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업을 다루는 서적을 읽는 일은 희로애락의 연속이다. DRY(Don't Repeat Yourself)를 이야기하는 것이 다일 줄만 알았던 'Canonicality'의 장에서는 비스타부터는 심볼릭 링크(mklink)를 지원했었다는 사실조차 나는 몰랐음에 분했고, YAGNI(You Ain't Gonna Need It)의 이야기에서는 EJB와 JSF의 과도한 엔지니어링에 절망했던 복잡성 세금의 추억이 되살아나 쓸쓸했다.
프레임워크란 실무에서 우려낸 문제의 부분 집합에서 그쳐야 한다는 부분, 표준이 때로는 유용한 일탈을 막는 권위가 되고 만다는 부분 등 나의 철학과 유사한 부분은 반가웠지만…
코드를 짰던 과거에 젖어 사는 그런 '왕년의 프로그래머'는 되고 싶지 않았건만, 이런, 결국 나도 그 꼴이다.
오늘은 하다못해 Monad, 아니 윈도우 파워쉘이라도 Getting Started하고 잠을 청하고 싶은 추운 날이다. (“...이라도” 라고 말할 만만한 것은 아님.)
이 논의에 대한 어떤 답안지는 이미 노빠에게도 몸비(MB좀비)에게도 불편한 형태로 정리되어 1년도 전에 제출된 바 있다. 제출자는 88만원세대의 우석훈.
낭만IT에 출입하는 분들은 대부분 IT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난국 속에서 그 관심을 적어도 풀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 이유는 IT의 풍경은 거시 경제의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산업은 결국 모든 산업을 위한 산업, 즉 메타 산업의 성격을 띠기에 시대의 거울로 현상을 비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IT와 관련된 국지적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의 타성은, 흙더미 속으로 나라마저 몰아 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한층 우울해지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렇게 국지적이라 생각했던 것들 하나하나가 현실의 해법을 주고 있다.
실제로 본서의 논지는 낭만IT에서 반복되어 온 주장과 오버랩되어 읽힐만한 부분이 있다.
- 대안적 존재로서의 제3부문의 실종과 이상계
- 북구적 정책에 입각한 강소국 모델과 스칸디나비안 스쿨의 교훈.
- 지리적 중앙형 시스템의 비극과 벨류체인 중앙형 시스템의 비극
| 괴물의 탄생 우석훈 저 |
노무현 정부가 이로써 만들어낸 것은 일종의 중남미형 이중국가(dual state)로의 전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노무현 집권기에 완벽하게 이중국가로 전환되지는 않았지요. [중략]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매우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라면 아마 5년만으로 충분했을 것 같습니다.
…
토목형 구조에서 지방토호들을 끼고 보상금과 건설로 지방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은,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구조악을 더 심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지금 우리가 겪는 이 난국은, 정략적 오류에 휩싸인 정치인과 이런 일 따위 자신과 관계 없다 방치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관계 없어 보이는 것들이 잘못될 때 그 폐해는 전국민에게 천천히 나눠질 뿐이므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반면 그 시간에 차라리 로비를 하여 얻어낸 직접적 이익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기에 위정자들은 그 본능에 따르고, 또 심지어 대개의 경우 자신들의 태만과 방종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쉽게도 이 퇴행적 메커니즘은 현존 1인1표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근본적 한계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기성정치의 틀에 잠입하여 기성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일 아니면, 기성정치 내에 이러한 한계를 인지하고 초월하려는 거점을 마련하는 일이겠지만 요원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요원하다 방치하는 나라의 종착점은 바로 dual state…
그 한계가 오기 전에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포디즘(fordism)에서 지식경영으로 목숨을 건 비약을 해야 하고, 본의든 타의든 이 전이에 성공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격차를 내일의 우리는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전인수라 할지 모르나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가늠자로 소프트웨어 산업처럼 적절한 것은 없다
[칼럼]IT빙하기를 살아 남을 용기 - ZDNet Korea
몬스터를 만들어 낸 것은 우리의 작은 선택의 결과라는 책임감을 이제는 되찾을 용기도 필요한 시기다. 그리고 동시에 상황이 단번에 호전되리라는 낙관도 과감히 버릴 시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