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에 해당되는 글 7건
- 2009/06/28 [낭만오피스] 영업 (8)
- 2009/06/19 신간 [웹 이후의 세계] (33)
- 2009/06/19 독서란 [...] (2)
- 2009/06/19 [낭만오피스] 야근 (4)
- 2009/06/19 [Column] IPTV와 월드가든 (3)
- 2009/06/18 침묵의 대가 (9)
- 2009/06/09 [낭만오피스] 노트북 (4)
오래간만에 작가 김국현으로 인사드립니다.
신간 <웹 이후의 세계>가 출간되었습니다.
- 클라우드와 그린 IT에서 소셜, 미디어, 그리고 UX까지......
- 변화의 파도에 직면한 경제와 사회, 그 대안 세계로서의 웹의 다음 전략은?
- 현실을 바꿀 이 자유의 시뮬레이터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 평론가 김국현이 던지는 우리 사회로의 문제제기
1장. 웹 2.0 그후, 해체와 생성의 미래
웹 2.0으로 상징되었던 변화의 징조는 웹과 인터넷 너머에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실질적 변화의 폭풍을 품은 거대한 구름이 우리를 뒤덮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비즈니스는 불황에 허덕이는 듯 보이지만 지금 전례 없는 와해와 재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사태의 배경에 있는 전략과 참여자들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요? 공평한 실현자 IT가 만들어 갈 디지털 라이프, 그리고 그들이 활약할 클라우드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2장. 회오리 속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임박한 변화들
변화의 요소들이 빚어 가는 신세계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삶과 비즈니스를 격변의 회오리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신세계는 누구를 위해 도래하는 것일까요? 우리 모두 그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2장에서는 그린 IT, 소셜, 모바일, RIA, UX, 미디어, SOA 등 최신 IT 트렌드를 통해 변화의 방향을 함께 읽어 갑니다.
3장. 웹 주의 선언
내일은 달라질 것이라 믿는 것. 변화는 긍정의 낙관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세워 나갈 반석으로서의 우리의 현실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믿음직스러운 곳일까요?
변화를 주어진 것,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이에 변화의 순기능 대신 역기능이 웹과 인터넷이 약속했던 이상계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 부조리를 털어내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 그 역시 우리가 풀어 가야만 할 과제입니다.
지금 서점에 배본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블로그를 통해 제 글과 그림을 읽고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께
이 책을 바칩니다.
(블로그나 컬럼의 모든 답글과 트랙백과 또 책의 서평은 빠짐없이 읽고 모으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 맥(脈)과 망(網)이란 본디 닫혀 있다. 마을과 인맥과 같은 전통적 맥과 망도 인간 개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파국으로 치닫는 일을 공동체의 통제로 제어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감정 한 켠에는 문 닫힌 안락함에 의해 보호받고 또 그 네트워크 안에서 인정받고 싶은 여린 마음이 있는 것이다. 개인의 이기심의 고삐를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부족감정이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월드가든이란 마찬가지로 이러한 안락함에 소구하는 정서적 합치점이 있기 때문에 생존하는 것이다.
마치 수많은 핸드폰 CP들이 WAP왕국을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왕국이 과금대행을 통해 수익을 보호해주고 또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IPTV도 그럴지, 컨텐츠 킹 방송3사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한번쯤 생각해 볼 때이다.
노전대통령의 영결식때였을 것이다.
TV에서 어떤 원로가 나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사회 각층에서 알만한 이들이 침묵하고 있지만 않았어도..."
지난 한 달 나는 불면 속에서 그 침묵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를 잠 못 들게 한 것은
현재의 분노보다도 과거의 억울함보다도
침묵이 준 미래의 어두움이다.
미래의 암흑 따위 사실 개인으로서의 나는 경험을 통해 길을 찾을 자신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황스러운 것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나를 둘러싼 공동체 집단이 겪게 될 더 광범위한 암흑이다.
마르크스도 하이에크도 제대로 읽은 적 없는 것 같은 도당들이
철학이나 경제학적 신념이 아닌
지리적 경도에 따라
좌파니 우파니 사회를 임의 재단하여 사상적 근거 무근의
자신들만의 세계에 매몰되어 낳은 갈등 덕에,
우리는 그나마 이 반도에 있던 공동체의 따스함을 잃어 버리고,
그나마 껍데기만 남은 ‘국가’라는 커뮤니티마저 냉소하기 시작한다.
TV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는 캠페인으로 넘친다. 그러나 기러기아빠는 늘어만 가고, 청년취업은 갈수록 힘들어진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다.
대학은 취업사관학교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단련된 그들의 미래는 밝을까?
허송세월해도 손쉽게 정사원이 된 기성세대는 젊은이의 무기력함을 오히려 매도한다.
어른들이 겨우 그렇다.
근대의 인류가 어른들에게 장유유서의 예를 갖춘 이유는,
그들의 오랜 경험과 식견이 자식과 손자를 대하듯 미래를 아껴주리라 믿은 덕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그렇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왔고 이끌고 있는 이들,
그 영감들을 믿은 결과가,
겨우 이 것이라면…
손잡고 일어나지 않는 그대가 바보다.
왜 그들을 믿고 그들의 프레임에 말리려 하나?
함께 ‘그날이 오면’을 부르던 당신의 선배들은 지금 영어유치원으로 기형적 사교육으로 정사원의 월급을 퍼나르고 있다. 심지어 그들을 자극한 상징마저 소멸시킨 채 이제 곧 추억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나마 연대(連帶)를 알고, 고전을 읽어, 뜨겁게 타 들어 갈 줄 알던 이들은
가까스로 세이프되어
이 세계의 저편에서 이 쪽 덕아웃을 침묵속에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선택속에서 세이프를 만끽하고 그리고 침묵해 왔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스스로의 침묵의 말로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 뿐이다.
이 간극과 깊이의 절박함을 이 사회의 알만한 이들은 말하지 않고 있다.
내 불면의 이유,
대강 이런 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