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99%

한국의 부호 5명 중 4명은 상속부자라 한다. 70% 이상이 자수 성가인 미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 지방 소도시의 방앗간이 대를 잇는다면 문화의 계승이지만, 정경유착 만렙의 재벌형 국가에서 이 수치를 확인하는 일은 사회 자체의 유동성이 매우 낮아진 상태로 고착화 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부자의 자제들은 이미 출생과 함께 상속이 시작된다. 사회관계자본이나 문화자본이라 불리우는 모든 것들이 그 것이다. 이는 삶을 살아 가면서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지만, 포괄적으로 상속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듯 계산하기 힘들다. 이러한 형태의 무형 상속은 학벌이라는 형태로 명문대에 입학하는 순간 합법적으로 완료되며, 장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사회는 명문대생이, 더 정확히는 1차 상속을 끝낸 이들이, 살아 가기 편하게 구성된다. 그 집단에 엉겹결에 끼어들어간 들러리들은 그 구성에 만족하며 침묵하는 기득권이 된다. 그리고 사회는 이 떳떳한 1차 상속을 더 효율적이고 노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변해 가는 것이다.

지금 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총체적 유동성 부족이다. 노력과 아이디어로 치고 올라가기 힘든 사회, 기득권자들이 오히려 접바둑을 두자며 덤비는 판인 사회. 그럼에도 누구도 이의 없이 어떻게든 바둑 한 판 둘지 주삣주삣 자리 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더 유연한 사회를 위한 여러 궁리 중, 오늘의 제안은: 상속세를 99%로 하는 것. 이런 농담 같은 제안이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더 농담과도 같은 정책도 버젓이 실행되고 있는 국가이기에 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만큼 세수 증가분이 생기니까, 대신 직접세도 모두 플랫한 세율로 거두어 들이는 것. 이렇듯 상속세 99%란 사회주의적 정책이라기보다 매우 자유주의적 정책인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 일률적으로 내고, 죽은 다음 전부 다 내는 셈이니까. 합리적 개인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그 부를 소비하려 애쓸 것이다. 그렇게 돈은 돌게 된다.

늙은 부자들을 오늘의 삶과 사회를 중시하는 자유로운 개인으로 강제로 만들게 하는, 실제로 상속세 99%를 셀프로 구현하고 있는 빌게이츠를 본 따 빌게이츠 법안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주윤발 법안이라는 말도 카리스마 있겠다.

세무사나 FP들에게 물어 보면 알겠지만, 부자일 수록 절세(혹은 탈세)가 쉬운 법이다. 이는 제도적 모순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자들은 설령 상속세가 99%가 되어도 어쩌면 크게 타격을 받지 않을지 모른다. 살아 있으 동안 얼마든지 세테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부산물조차 사회적 유동성을 늘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예컨대 2세의 창업붐이 불거나 학력이 더 높아질지도 모르는데, 이는 모두 사회적으로는 이득이다.

상속세 99%.

노인으로부터 돈을 받아 젊어져야 할 사회에 나눔으로써 세대간 격차를 줄이고, 부모의 빈부차에 의한 격차는 은혜받은 스타트 정도로 마무리하여 모두의 도전 의식을 고취하는 합리적 해법.
이 해법이 시작되면 항산(恒産)을 이룩한 이들일 수록,
늘 내일 내가 갈지 모른다는 가정으로 하루를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말 내가 자식에게 그리고 사회에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철학자가 되고 말 것이다.

이 고민의 힘, 상속세 99%의 가장 큰 효과다.

Comments

“상속세 99%”의 5개의 생각

  1. 네 일단 살 집하나 빼고는 사회에 환원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처럼 젤 큰 부자들부터 이렇게 가지 않는한 바뀌기 쉽지 않을 듯 하군요. 우리나라 재벌들이 망할리는 없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에서 자신의 자식이 아닌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재산의 99%를 기부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겠죠?..^^;;

  2. 너무 급진적인걸요.
    미국의 큰 부자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교육의 효과가 크겠죠.
    백년이 걸리더라도 교육부터 뜯어고치는 것이 나을 듯 싶습니다.
    상속세 99%라는 엄청난 규제가 생기면 피하려고 하는 인센티브도 굉장하고,
    그렇게 되면 피하고자 하는 자와 잡고자 하는 자 간에 비생산적인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3. 일단 편법증여나 전환사채, 유령기업 창업을 위한 투자등의 수단이 증가할 것이 눈에 보이는군요.ㅠ.ㅠ 근데 상속이 플러스인 사람도 있지만 마이너스인 사람도 있어서요 99%를 때리면 플러스인 사람이 불평등하다면서 헌법소원을 때리면 바로 짤릴 법안인 것같습니다. OTL. (지금은 마이너스가 아무리 쎄도 자식에게 불상속 권리가 있지요. 그러나 법안은 이렇고 현실은? ㅎㅎ)

  4. 어느 법안이든 현실적인 어려움을 미리 걱정하면 끝이 없으니,
    상속세를 대폭 높이는 건 찬성하지만 한번 99%까지 올리면 뒤에 잘못돼서 되돌릴 때 후폭풍이 장난 아닐테니 70%, 80% 정도면 어떨까 싶네요.
    어차피 재산 물려주느라 투자할 생각이 별로 없는 모양이던데(부자인 지인과 이야기해보니) 상속세 올린다고 투자가 줄 것 같진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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