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평범한 부모에게 감사
goodhyun's Freetalk on 2010/09/06 09:00
재벌 3세 A씨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뛰어난 일을 해내도, 모든 것이 주어진 것이라며 다 물려 받은 덕이라고, 날 모르는 사람들이 말하고 있을 것만 같아." 부자 부모를 지닌다는 것이 개인에게 있어서 반드시 플러스의 사건만은 아님을 깨닫게 한 한마디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개인이 이루어낸 것의 대부분은 유전적으로 환경적으로 물려 받은 덕임은 과학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맞는 말. 불공평하게도 출발선이 다른 것이 대자연. 그런데 이조차 못미더워 갖가지 특혜, 특히나 세습을 하는 것 또한 인류의 사회. 사실 세습 자체는 인류 공통으로 발견되는 욕망이기에 피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예전에는 이처럼 떳떳하지 못하고 켕겨 할 줄 아는 신사가 기득권이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니 이러한 일말의 거리낌도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부녀도 있었던 듯.
그렇지만 그들을 한바탕 비웃을 수 있게 한
우리들의 평범한 부모에게
감사.
부모보다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은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심연에 박혀 있던 힘을 끄집어 낸다. 내가 열심히 살아서 고생만 해온 나의 가족에게 작은 보람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이 개인을 성장시키고 그 개인이 속한 집단에 에너지원이 되기 때문이다. 고도성장사회의 원자로는 여기에 있었다.
부모의 늘 더 주고 싶지만 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읽어 내는 감수성.
마찬가지로 효도도 제대로 한 번 못해 드린 부모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내가 정말로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 뿐임을 깨닫는 반전.
별 힘없고 풍족하지 못한 부모 밑이었기에 여러분이 느낄 수 있는 풍요로운 감정들인 것이다.
대학시절 교수 B씨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가 그릇 등 가재도구를 하나 하나 모아갈 수 밖에 없었던 빈털터리의 신혼이었다고 했다. 그 교수가 가르치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 행복을 추억하는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부자는 아니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열심히 살았기에 내가 이룬 작은 것들에 떳떳할 수 있음은 축복인 것이다. 부모보다 조금 더 넉넉해짐에 그 작은 사건에 고마워하는 부모의 모습. 이를 느낄 수 있다면 여러분은 100%의 여러분이니까.
그들을 시기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스스로 이루어 가는 행복을 모를 그들을 적극적으로 동정하고 안쓰러워 할 때 그들은 켕기고 찔리고 떳떳하지 못해 마음 깊이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1%라고 착각하는 그들의 눈을 응시하며 비웃어 줄 수 있는 당당함. "나는 100% 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들의 특권이 그들의 마음을 갑갑하게 만들고 결국은 사회를 향한 미안한 마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끌어내는 것.
자아, 오늘도
내일을 위해 가족을 위해 달리다 넘어지지만 그래도 스스로 다시 일어나는 여러분의 긍지에
건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