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평범한 부모에게 감사

재벌 3세 A씨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뛰어난 일을 해내도, 모든 것이 주어진 것이라며 다 물려 받은 덕이라고, 날 모르는 사람들이 말하고 있을 것만 같아.” 부자 부모를 지닌다는 것이 개인에게 있어서 반드시 플러스의 사건만은 아님을 깨닫게 한 한마디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개인이 이루어낸 것의 대부분은 유전적으로 환경적으로 물려 받은 덕임은 과학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맞는 말. 불공평하게도 출발선이 다른 것이 대자연. 그런데 이조차 못미더워 갖가지 특혜, 특히나 세습을 하는 것 또한 인류의 사회. 사실 세습 자체는 인류 공통으로 발견되는 욕망이기에 피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예전에는 이처럼 떳떳하지 못하고 켕겨 할 줄 아는 신사가 기득권이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니 이러한 일말의 거리낌도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부녀도 있었던 듯.

그렇지만 그들을 한바탕 비웃을 수 있게 한 
우리들의 평범한 부모에게
감사.

부모보다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은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심연에 박혀 있던 힘을 끄집어 낸다. 내가 열심히 살아서 고생만 해온 나의 가족에게 작은 보람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이 개인을 성장시키고 그 개인이 속한 집단에 에너지원이 되기 때문이다. 고도성장사회의 원자로는 여기에 있었다.

부모의 늘 더 주고 싶지만 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읽어 내는 감수성.
마찬가지로 효도도 제대로 한 번 못해 드린 부모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내가 정말로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 뿐임을 깨닫는 반전.
별 힘없고 풍족하지 못한 부모 밑이었기에 여러분이 느낄 수 있는 풍요로운 감정들인 것이다.

대학시절 교수 B씨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가 그릇 등 가재도구를 하나 하나 모아갈 수 밖에 없었던 빈털터리의 신혼이었다고 했다. 그 교수가 가르치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 행복을 추억하는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부자는 아니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열심히 살았기에 내가 이룬 작은 것들에 떳떳할 수 있음은 축복인 것이다. 부모보다 조금 더 넉넉해짐에 그 작은 사건에 고마워하는 부모의 모습. 이를 느낄 수 있다면 여러분은 100%의 여러분이니까.

그들을 시기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스스로 이루어 가는 행복을 모를 그들을 적극적으로 동정하고 안쓰러워 할 때 그들은 켕기고 찔리고 떳떳하지 못해 마음 깊이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1%라고 착각하는 그들의 눈을 응시하며 비웃어 줄 수 있는 당당함. “나는 100% 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들의 특권이 그들의 마음을 갑갑하게 만들고 결국은 사회를 향한 미안한 마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끌어내는 것. 

자아, 오늘도
내일을 위해 가족을 위해 달리다 넘어지지만 그래도 스스로 다시 일어나는 여러분의 긍지에
건배.

Comments

“우리들의 평범한 부모에게 감사”의 8개의 생각

  1. 본 블로그의 내용은 넉넉한 CC규약(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이기에, 마음껏 퍼나르셔도 됩니다. 만화는 만화내에 적혀 있으니 만화만 퍼 나르셔도 됩니다.

  2. 와, 이글은 정말, 몇번이나 읽어도 늘 새롭게 감성을 자극합니다. 한문장 한문장이 이렇게 주옥같을 수 있다니. 오랫동안, 비슷한 생각을 해왔었는데 아스라히 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 두루뭉실함을, 명확한 Text로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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