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라는 정의

세금에는 부의 재분배 기능이 있다. 부자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이를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면 된다. 그런데 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일이 실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확실히 효과적으로 부자를 찾아 내고 확실하고 정확하게 가난한 이들에게 분배할 수 있을 것. 그러나 이 중요한 일이 실은 매우 위태롭고 통제하기 힘든 조직들에 의해 일어난다. 현재 한국의 세금이 강바닥 흙에 뒤엉켜 가라 앉는 모습을 보자니, 그 불완전성은 기정 사실이고, ‘고소득 탈루’로 검색해 보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을 볼 때 부자일 수록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운 듯하다. 유리지갑 근로자의 사회부담금이 고소득 자영업의 2.5배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부의 흐름(flow)에는 민감해도 부의 축적(stock)에는 관대한 것이 현재의 시스템이다.

또한 다시 이야기하지만 분배가 실제로 이루어진 것과 분배를 한듯한 느낌은 다른 것이다. 정부나 정권의 자의적 복지가 문제인 것은, 복지를 관의 시혜라고 베푸는 듯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어서다. 정부가 판단하는 사회복지와 저소득층이 절실히 필요하는 것이 따로 노는데, 그 이유는 여기에는 공급자의 경쟁이 개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혜의 감정이 위험한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는 쪽으로 분배가 우선시되고, 사회 전체의 후생을 최대화하는 기능이란 조직의 판단에 의해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통일세 논란도 정부의 능력에 대한 착각과 오만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다.

내가 부자감세와 직접세(소득세/법인세) 인상을 모두 반대하는 이유는, 일단 시스템의 한계상 최종 보스인 축적(stock) 대신 흐름(flow)을 공격하기 마련이고, 정부의 분배 능력 미비는 계급 갈등을 야기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양한 계급 갈등의 해소는 복지정책론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테마다. 이 갈등이 체하게 되면 누구도 원치 않는 파쇼정권이 투표로 버젓이 생겨나기도 한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직접세의 조세저항이 강하다고 아는 이들이 있는데, 오히려 간접세 인상이 여러나라의 경우를 살펴 볼 때 정권 붕괴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그렇게 정권의 목숨을 건 카드를 이렇게 엉뚱한데 쓴 정권이란 연구대상이다.) 소득이 낮을 수록 소득에 대한 간접세 부담율이 높아지기 때문이고, 계층간 시기심을 자극, 대중의 민심을 흔들리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자들의 소득 중 그들이 쓰는 소비의 비율은 작고, 가난할 수록 버는 대로 쓰기에 바쁘다. 실제로 고소득층의 간접세 부담율은 저소득층보다 낮기 마련이고, 이를 간접세의 역진성이라 한다.

그러나 간접세의 역진성보다 걱정스러운 것이 바로 세대간의 역진적 세부담이다. 단일 시점의 소득만을 고려하면 간접세의 역진성이란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 가야 할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 그리고 갈수록 젊은이들의 소득 기회가 줄어 드는 시대다. 평생의 소득을 고려한 공평한 부담은 계산법이 달라진다. 근로 인구 구성이 역피라미드형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 근로소득이 없다고 하여 가난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간접세의 역진성을 어느 한 시점의 소득 수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 주위에는 부자이지만 일도 하지 않으면서 세금도 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사회에서의 간접세의 역진성 여부에 대한 고찰은 재정학의 최근 테마 중 하나이기도 하고, 심지어 누진적이라는 보고도 있다. 사견으로는 상속세 100%라면 죽기 전에 모두 쓸테니 간접세도 완전히 누진적이 될 듯하다. 그렇게 가장 효과적으로 축적을 흐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흐름만 공략 받아도 억울하지 않다.

간접세는 다소 역진적이지만 이로 인해 절약될 수 있는 행정의 사무 처리 비용이 크기에 재미 있는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아예 직접세를 폐지하고 간접세만을 거두어 무언가 해보자는 일도 있었다.

바로 기본소득(Basic Income)이라는 발상.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소득을 일률 지급하는 것이다. 정부가 일체의 판단을 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거두어 지급하기 때문에 행정 비용이 삭감될 수 있는데, 파탄 직전의 사회 보장 제도, 목적 없이 땅을 파고 있는 공공사업이 완전 대체될 수 있는 셈이다. 이 세상에는 안하느니만 못하는 노동도 많다. 사회 자체가 최저한의 생활이 보장해 주기에 기업의 고용 유동성도 당연히 높아져 좀비에 기득권이 점령되는 일도 없어진다. 기본소득이 간접세와 셋트가 되면 상속세 100%가 되기 전에도 누진적이 될 수 있다. 간접세가 오른 만큼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 갈 절실한 기본소득이 오르지만 부자들에게는 새발의 피 같은 수치이기에.

물론 아직은 부의 소득세(負의 所得稅, negative income tax)와 마찬가지로 꿈과 같은 일이라고 치부하는 이들이 더 많음을 안다.

그러나 진보란 더 나은 길이 있다고 믿으며 상식을 의심하는 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를 재분배하면서도 어떻게 부를 창출하는 일을 독려할 것인지, 그리고 이 극단적 대립과 고립의 사회를, 가진자와 아직 갖지 못한 자 모두의 연대를 통해 결속할지 고민하는 힘이다.

모두가 행복하지만 새로운 생각을 해낸 이들과,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난 이들이 조금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

우리가 교과서적인 혹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의한 상식을 이야기할 때 가끔은 스스로 의심하며 떠 올려 봐야할 필연적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사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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