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웹자유주의라는 말을 책 [웹이후의세계]에 썼을 때 와이프는 극력 반대했다. 한국에서 ‘자유주의’라는 말이 지닌 함축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고 또 내 성향과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론 맥락에서 읽혀질 법한 빌어 먹을 천민적 시장만능 자유주의자라고 낙인 받는 일의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어도 막무가내로 써내려 갔는데, 그것은 독자가 웹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를 헷갈리지 않으리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 일반에 내재된 본질, 즉 결국 타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개인 권리의 불가침성이 웹을 발전시키고 융성하게 한 본질적 요소임을 믿었기 때문이고, 그 추동력을 웹 너머 현실로 가져감에 있어 결국 핵심적 요소라 믿었기 때문이다.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윤평중 지음/아카넷

우연인지 정확히 같은 날 출간된 윤평중의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은 한국 정치의 관점에서 비슷한 호소를 하고 있었다. 중도좌파로 알려진 이력답게 진정한 자유주의의 최대 공적 신우파(뉴라이트)를 밟아 버리는 것은 기본이지만, 동시에 지식인 사회에서 과대 포장된 진보라는 이름의 좌파적 자유주의관에도 일침을 가한다.

자유주의의 역사적 실천에서 오는 풍부한 교훈을 외면한 채 편협한 계층적 이해관계에 맞추어 정치공학적으로 굴절시킨 신우파의 자유주의 찬양과, 자유주의의 부정적 측면만을 부풀려 일방적으로 매도하면서 안이한 지적 만족에 빠져 있는 좌파적 反자유주의라는 두 극단은 한국 지식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빚어낸 사상적 쌍생아라고 할 수 있다.

허나 그가 말하는 급진자유주의라는 포스트 신자유주의시대에 부합한 진보적 자유주의의 지향은 아리송하다. 지금 한국 사회가 위기에 봉착한 계기는 그러한 새로운 지향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이에크도 마르크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스스로의 자기 판단과 결단을 포기하고 제3자적 관점에서 세상을 방관했기 때문이다. 언제 우리에게 뜨거운 토론이 있었나? 사상과 의견을 부딪뜨리는 토론 대신, 감정적 편가르기가 만든 참호에 숨어 고함만 질렀을 뿐…

그 덕에.
자칭 좌파지식인척 하다가 경제 좀 나아질까 자유주의를 지지했더니 알고 보니 전체주의더라는 희대의 코미디 속을 작금의 평균적 사회인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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