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전대통령의 영결식때였을 것이다.
TV에서 어떤 원로가 나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사회 각층에서 알만한 이들이 침묵하고 있지만 않았어도..."
지난 한 달 나는 불면 속에서 그 침묵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를 잠 못 들게 한 것은
현재의 분노보다도 과거의 억울함보다도
침묵이 준 미래의 어두움이다.
미래의 암흑 따위 사실 개인으로서의 나는 경험을 통해 길을 찾을 자신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황스러운 것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나를 둘러싼 공동체 집단이 겪게 될 더 광범위한 암흑이다.
마르크스도 하이에크도 제대로 읽은 적 없는 것 같은 도당들이
철학이나 경제학적 신념이 아닌
지리적 경도에 따라
좌파니 우파니 사회를 임의 재단하여 사상적 근거 무근의
자신들만의 세계에 매몰되어 낳은 갈등 덕에,
우리는 그나마 이 반도에 있던 공동체의 따스함을 잃어 버리고,
그나마 껍데기만 남은 ‘국가’라는 커뮤니티마저 냉소하기 시작한다.
TV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는 캠페인으로 넘친다. 그러나 기러기아빠는 늘어만 가고, 청년취업은 갈수록 힘들어진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다.
대학은 취업사관학교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단련된 그들의 미래는 밝을까?
허송세월해도 손쉽게 정사원이 된 기성세대는 젊은이의 무기력함을 오히려 매도한다.
어른들이 겨우 그렇다.
근대의 인류가 어른들에게 장유유서의 예를 갖춘 이유는,
그들의 오랜 경험과 식견이 자식과 손자를 대하듯 미래를 아껴주리라 믿은 덕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그렇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왔고 이끌고 있는 이들,
그 영감들을 믿은 결과가,
겨우 이 것이라면…
손잡고 일어나지 않는 그대가 바보다.
왜 그들을 믿고 그들의 프레임에 말리려 하나?
함께 ‘그날이 오면’을 부르던 당신의 선배들은 지금 영어유치원으로 기형적 사교육으로 정사원의 월급을 퍼나르고 있다. 심지어 그들을 자극한 상징마저 소멸시킨 채 이제 곧 추억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나마 연대(連帶)를 알고, 고전을 읽어, 뜨겁게 타 들어 갈 줄 알던 이들은
가까스로 세이프되어
이 세계의 저편에서 이 쪽 덕아웃을 침묵속에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선택속에서 세이프를 만끽하고 그리고 침묵해 왔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스스로의 침묵의 말로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 뿐이다.
이 간극과 깊이의 절박함을 이 사회의 알만한 이들은 말하지 않고 있다.
내 불면의 이유,
대강 이런 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