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요즈음 바보짓이 잦다.

얼마전에는 홈서버 OS를 복구 불능으로 만들어 버리더니, 급기야 실수로 PDA를 하드리셋해 버리고, 어제는 망가진 PDA가 PC를 거쳐 Exchange의 모든 일정을 날려 버렸다. 내 결정적 조작 실수였다.

싱크가 진행되면서 아웃룩에서 일정이 사라져 가는 풍경을 바라 보는 일은 참 묘한 일이었다.
순백의 2월이 펼쳐진다.
아무 스케줄도 약속도 일정도 계획도 없는.
3월, 4월, 그리고 영겁의 미래…
어떤 기념일도, 어떤 세미나도, 어떤 미팅도 없는 무결한 시간들.

좌절이나 허탈이라는 감정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찾아 온다.

미래란 원래 무엇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빈 공간이지만, 그 미래에 일정이 들어서면 이는 그 순간 "사실"이 되어 버린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강한 확신으로 존재할 것이 분명한 "사실"이.

우리는 일정을 통해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미지의 미래를 "사실"로 만들었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대신 우리는 그 안도감 속에서
사실은
그 쳇바퀴 속에서
원래 미래가 가지고 있어야 할 두려움과 두근거림과 설렘과 막연한 희망을 잊어 간 것일지도 모른다.

순간 나도 "발표 시간을 잊고 집에서 자고 있는 악몽"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철문이 열려도
쳇바퀴에서 뛰어내릴 용기를 잃은 다람쥐처럼
기억을 더듬어 어떻게 철문을 닫아야 하는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Comments

“미래”의 9개의 생각

  1. 순백의 미래를 보는 기분이라.. ^^ 저는 윈도우 포맷 후에 재설치한 후에 아웃룩 일정을 익스체인지 서버와 동기화하면서 순백의 미래가 하나하나 새로운 약속들로 채워져가는 것을 보면 숨이 턱 막히곤 합니다. ^^

    때로 거꾸로 백지화하면서 쾌감을 느껴봐야겠군요.

  2. “미래란 원래 무엇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빈 공간이지만, 그 미래에 일정이 들어서면 이는 그 순간 “사실”이 되어 버린다.”라는 문구가 참 좋네요. 일정이 잡히는 순간, 예정된 미래가 되어버리는 거죠 뭐..

  3. 전 그래서, Outlook 보다는 live.com 캘린더에 일정 관리를 합니다..^^;;
    Outlook 이 좋은 툴임에는 분명하지만,. PDA 같은 기기에 동기화를 해서 이동성을 높인다 하더라도,.. 암튼,. 제 경우엔 처음엔 불편하지만 익숙해지면 웹이 더 좋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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