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어제는 스승의 날.

두 번째 직장에서의 “스승”이 떠올랐다. 첫번째 직장에서 나는 (아니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대단한 줄 알았다. 그러나 뼈저린 실패를 맛본 후 나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까지 걸었던 길과는 정반대의 길. 기술적으로나 마켓으로나 비즈니스 모델로나 완전히 다른 직업을 찾아 가게 된다. 청바지를 벗고 양복을 사러 갔다.

그리고 나는 ‘가방모찌’가 되었다. 그 초거대기업에서 나는 내 직속 상사의 가방을 들며 많은 고객을 만났다. 그와 함께 다니던 그 봄날이 생각난다. 고객이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 보곤 했다. 젊고 건방졌던 내가 우스웠다. 웹과 PC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3년째 전원을 내리지 않는 괴물을 조종하는 이들을 만나 경제를 움직이는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業도 깨닫게 되었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린 후 새롭게 배웠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있었다. IT라는 이 작은 업계에도 그러한 원점회귀란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에도 또 다시 놀랐다. 백지로 제로로 돌아 갈 때 우리 눈에는 스승이 보인다.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그가 내게 가르쳐 준 말을 후배들에게 하고 있음에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스승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스승이될 수 있고, 우리는 가까운 곳에 스승을 두고 있다.

젊을 수록, 패기가 넘칠 수록,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럴 때일 수록 누군가의 가방을 든다는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길위에서도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스승은 교실속에서 가르쳐 주는 것보다 더 크고 더 긴 가르침을 더 깊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Comments

“스승의 날”의 3개의 생각

  1. 그렇군요. 저에게는 왜 떠오르는 스승이 없는지—. 아마도 제가 방황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듯 합니다. 스승이 없는 사람은 제자도 만들 수 없다는—-.

  2. 가까운 곳에 스승이 계시지만,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그분을 스승으로 섬기느냐 마느냐는 자기의 선택이겠지요.. 스스로 선택한 스승의 ‘더 크고 더 긴 가르침’이라는 맺음말에도 공감합니다 ^^

  3. 두번째 직장에서의 “스승”님께 안부전하고 싶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감사하다고…가능할까…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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