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Line 02/07] 해커, 로보트왕되다.

이 원고는 제가 언젠가 “선데이 프로그래머”를 다루었던 이후, 또 다시 꺼내어 말해 보는 열정에 대한 獻詞입니다. 창조는 어떠한 형태이든 칭송되어야 합니다. 창조 행위가 사회와 규범에 의해 재단되고 평가되기 시작할 때가 바로 진보의 탄력이 꺽이는 변곡점이 됩니다. 이를 거부하는 젊은 정신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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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 로보트왕되다. 2002-06-17 오후 7:24:25 2002-06-18 오후 4:29:04 “해커, 로보트왕되다.

이제는 잊혀져 가는 그 시절의 블록버스터 “”인디펜던스데이””에는 기가 막힌 “”결정적 장면””이 연출되었다. UFO에 잠입, 중앙처리장치에 바이러스를 업로드하는 컷이었다. 시리얼이었는지 패러랠이었는지 도대체 어떤 인터페이스를 써서 주입했는지는 영화적 공상의 영역이라 하더라도, 외계인이 사용하는 CPU와 OS가 무엇인지 무슨 언어로 외계인용 배포판을 컴파일하였을지는 상상조차 불허한다. 어떻게 이 미지의 장비 사양을 파악하여 바이러스를 짤 수 있었을까? 에일리언 API가 공개된 것인가 UFO SDK가 유출된 것인가?

그렇지만 사실 지구상에는 이에 못지 않는 기가 막힌 상황과 씨름해 온 족속이 이미 있으니 바로 희대의 한량들, 해커다. 오늘날 해커란 단어는 사이버 경찰수사대와 동일 단락에서나 쓰일 정도로 망가져 버렸지만, 본디 해커란 자유 분방한 천재 프로그래머를 뜻하는 자랑스러운 작위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의 기행과 업적은 이 업계의 칭송할만한 금자탑으로 쌓여졌고, 그것이 바로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다. 교과서대로 매뉴얼대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해커의 길이 아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아니 거꾸로 천하에 드러나기를 꺼려하는 대상을 뒤집어서 파고 드는 것이 바로 해커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해커의 족적은 재미가 있는 곳에 늘 흩어져 있다. 마메(MAME)와 같은 게임기 에뮬레이터의 탄생과 발전에서 엿보이는 그네들의 장인정신하며, MP3플레이어용 펌웨어를 변경 그 작은 창에 PDA기능을 추가하는 등의 재기 발랄한 예술혼하며, 그저 경악스러울 뿐이다. 모름지기 연산 능력이 있는 개체란 모두 해킹의 대상이라는 듯, iPodHacks.com이니 aibohack.com이니 특히나 “”가제트(gadget)류””로 표현되는 어른들의 장난감들은 21세기형 해커들의 사랑스러운 농락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해킹이라는 허락 받지 않은 금단의 작업이 가상공간내의 자아도취에서 끝나지 않고 현실세계를 향해 애교를 부린다면 그 즐거움은 어떠할까. 소니의 로보트 아이보를 해킹하는 이들은 마치 애완견과 대화할 수 있는 궁극의 동물어(語)를 발견한 듯인 양, 기가 막힌 아이디어로 아이보를 길들이고 있다. 이미 레고의 마인드스톰이 공기를 가르며 움직이는 로보트 해킹의 즐거움을 가르쳐 준 바 있기에, 아이보를 소니가 미리 불어 넣은 순종적 본능의 굴레에서 끌어 내어 무아지경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이미 예견 된 일이었을 것이다.

해커들은 자신들의 권리란 제조자에게 사양의 공개를 요청하여 구매자에게 무한의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지적자산이라는 미명하에 공개를 거부한 제조업자에 대해 해커들은 집요한 분석을 통한 공개 프로그램으로 지적 응징을 가한다. 그러나 레고와 소니, 이들 기계공학적 소양의 전파상 들은 오히려 해커들을 위해 한껏 배려를 한다. 소니는 아예 사이트까지 오픈, 자사의 로보트 조작 API인 OPEN-R을 해커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해커들의 활동이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구미가 당겨서이겠지만, 이제 해킹의 고단함에 대해 잘한다 잘한다 칭찬까지 해주니 로보트를 마음껏 드라이브하는 일에 탄력이 붙는다. R-CODE라는 스크립트까지 마련하여 gcc를 설치할 줄 모르더라도 아니 아예 C++를 모르더라도 누구나 해킹의 맛을 볼 수 있도록 해킹의 대중화를 배려하고 있을 정도이다.

소여(所與)의 세계를 바라보며 혁명적 마인드를 가져 보지 못한 범인들을 비웃듯, 해커는 이제 사이버스페이스를 벗어날 해킹의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시스템이라는 세계가 창조되어 주어질 때,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변혁을 시도한다면, 이야 말로 해킹이라 불릴만한 태도다. 이제 이 마음가짐은 모니터 밖으로 벗어나와 로보트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발 밑의 아장아장 로보트의 무한 폭주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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