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가 죽는다면 그들의 블로그는 어떻게 될까?

 

어설프게 철학하는 모든 젊은 이들은 어느 순간 유아론(唯我論)의 미로에 빠져 있곤 한다. 나도 그랬다. “실재하는 것은 자아뿐이고 다른 모든 것은 자아의 관념이거나 현상에 지나지 아니한다는 입장”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일은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내 인생이 실은 전혀 다른 별의 전혀 다른 생물체의 가상 게임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그 괴생물체가 지구별의 블로거를 분하여 즐기는 전기 화학적으로 완벽한 체험 게임.

GAME OVER

라고 깜빡일 때 나는 괴생물체의 일상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내 눈 앞의 모든 세계와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내 인식이라는 치밀한 애플리케이션내의 프로그램 코드가 아님을 어찌 증명할 수 있을까?

가장 보편적이고 무모한 증명의 시도는 내 인식이 종료(terminate)되는 것이다. 내가 사라져도 이 세상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고 태연하게 그대로 기능한다는 기분 나쁜 인식을 사라진 ‘나’는 결코 느낄 수 없을 테지만.

MyDeathSpace.com은 인식을 잃은 Myspace.com 사용자들의 무덤이다. 오히려 우리는 죽은 자의 반대편에서 결코 유아론 따위 의미 없음을 그들을 지켜 보며 깨닫게 된다. 언젠가 만인에게 공평히 찾아 올 죽음을 그들 보다는 더 잘 알고라도 있는 듯.

블로거가 죽는다면 그들의 블로그는 어떻게 될까? 죽은 자의 미니홈피는 어떻게 될까? 현실계에서 죽음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만, 이상계에서 그 흔적은 의외로 길게 간다. 아니 길게 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이 영원히 사는 길일까? 설치형 블로그라면 계정비를 내지 못하는 1년 뒤에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포털 블로그를 하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일까?

적어도 우리는 유아론을 벗어나 한 두 가지 무언가를 깨닫곤 한다.

나의 인식의 끝은 세계의 끝이 아니라, 존재 갱신(update)의 끝일 뿐임을…

RSS란 내 존재의 Vital Sign임을…

그렇게 우리는 서로 손을 잡듯 혈관을 이어 가듯 서로의 존재 갱신을 확인하며, 우리는 서로 살아 가고 있음을, 그렇게 이 거대한 지구별을 이 밤에도 빛나게 하고 있음을.

Comments

“블로거가 죽는다면 그들의 블로그는 어떻게 될까?”의 7개의 생각

  1. 몇번 고인이 된 분들의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방문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더랬죠. 내 블로그도 내가 죽고나면 더이상 존재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래서 동일한 내용을 포털블로그에도 올리고 있긴한데… 디지털로나마 내 삶과 생각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데…

  2. 가끔가다 블로그(or통신) 생활을 중단하거나 접을 때가 있죠. 예를 들면 하이텔을 안하게 되면서 neolith 라는 아이디를 쓰지 않게 되던가..

    그런 것도 일종의 death 라고 봐야 할까요? 육체의 죽음, 정신의 죽음과는 또 다른 차원의 죽음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주인장의 환상계론에서는 죽음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일까요?

  3. 라띠 / 포털 블로그는 일종의 유령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Hakkyu Kim / 자의에 의한 임의적 환생이 가능하므로, 죽음으로 인식하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4. 온라인 자체가 일종의 유령들의 세계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실체가 있는 유령들이겠죠. 이걸 머라고 불러야 할까요?

  5. 죽은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다보면, 묘지에 들리는 것과 비슷하더군요. 그냥 죽은 녀석이 살아 있는 것처럼 방명록에 글을 남기기도 하고, 생일이 되면 들리기도 하고.. 죽은지 얼마 안되는 녀석 홈피에는 그녀석이 죽은지 모르면서 살아있는지 알고 안부 묻는 녀석들도 있고…그러다보면… 히트수도 점점 줄어들고.. 그 친구를 그리워하면서 적는 글도 점점 횟수가 줄어들고… 그렇게 점점 사라지더라구요.

  6. 분위기가 으스스해지는 유령의 세계로 가는 것 같습니다.
    인식을 전환해, 글이 나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도구라면
    그글 자체가 바로 나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의 일각이 유령의 세계, 이상계의 일면이 유령의 세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는 이러한 블로그 스피어가 유령의 세계보다는 “중간계”의 엘프가 사는 도시인 리븐델 처럼 보입니다. 영원한 삶과 젋음을 누리는 엘프들의 도시…

    블로그 스피어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그런 Post들이 제 눈에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일까요… ^_^
    다시 생각해 보면, 다크엘프가 사는 어둠의 동굴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_-;;;

    예전에는 자주 굵어지던 RSS피드가 더이상 빛을 내지 않는게 오늘따라 더 눈에 잘 보이네요. RSS가 Vital Sign이라면… 저는 Call of Death를 내리는 의사일까요…

  7. 천천히 앞에서부터 읽어 내려오다가 이 글에 도착했습니다. 얼마 전에 한 블로거가 죽었지요. 블로그라는 것이 알려지기 전부터 여섯 마리 고양이들로 알려진 사람이었어요. 어느날 갑자기 고양이들을 분양 보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지병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한 번 대화해 본 적도 없는데. 참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http://lucille.tistory.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