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의 사내 정치술

서양 기업 조직의 사내 정치가 동양의 그 것과 다른 것이 있다면 (물론 여기서 말하려는 정치란 어디까지나 일반론) 그 것은 바로 적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갑자기 적이라는 말이 등장하니, 무슨 사회생활을 그렇게 까칠하게 해야만 하나 싶겠지만, 그것은 우리네 생각이고, 서양의 직장인들은 의견의 대립이 해소될 수 없다 판단되면 이제 그 상대방은 라이벌일 뿐이다. ‘어, 그래? 지금 나하고 해보겠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상대방은 주적이 된다. 그리고 적으로 간주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승부를 내고 엎어지면 완전히 밟아 버린다. 물론 구둣발 대신 화사하게 웃으며 퇴사하는 뒷모습을 배웅한다거나, 부서 이동 파티를 열어주는 가식을 곁들여서. 그네들의 직장이 유동성이 높은 것도 바로 그러한 문화 탓이다.

동양은 좀처럼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두리뭉실 함께 가려 하고, 행여 살아 가며 적이라도 만들지 않을까 노심초사, 좋은게 좋은 것, 아까까지 삐쳐서 말도 안 하다가도 삼겹살 소주 한잔에 형님 아우 되는 것이 또 우리네 정서다. 진정한 가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양합리주의적 사내 정치의 논리로 보자면, 뜻을 이루면서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는 것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겠지만, 비판을 하면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 아닌 것은 아닌 것. 따뜻하고 다정한 해고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적이라니, 밟아서 재기를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페퍼로니 전략이란 것이 있다.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One evil action everyday keeps the psychiatrist away.”

표어는 귀여운 소악마 풍이지만,

좀 과하게 말하자면, 오피스에서도 악의 본능을 숨기지 말고 적은 밟아 버리라는 것인데, 예컨대

당신이 결코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그러니까 쉽게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

크로마티고교 풍으로 말하자면 “와루(ワル)”의 전술을 활용하는 전략인 것이다.

 

그대의 혁신에 주위가 고마워할 것이라 기대하지 말라. 인간은 누구나 변화를 귀찮아 한다. 혁신가란 귀찮은 존재일 뿐. 그러나 대결상황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면 혁신은 물건너 간 것이다. 그냥 묻혀 가는 거지. 정년 퇴직하는 그날까지. 그러나 이제 그런 날을 마련해 줄 직장이 몇이나 될까…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전진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 말하던 스승이 생각난다.

confrontation은 즐겨야 하는 것이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혈압이 올라가더라도. 설령 악(惡)이라는 강장제를 마셔야 하더라도. 그러나 악의 %가 지나치면 게임회사이야기에서 대활약중이시던 ‘에이전트005‘가 되고 마는 것이니, 그 양념 배합은 각자의 몫.

그렇지만 에이전트005는 대개의 경우 욕은 먹을지라도 높은 연봉과 여유로운 개인생활을 즐기며 순진한 주인공들을 착취하면서 태평성대하고 있다. 조직의 모순이랄까 구조의 아이러니랄까. 

 

페페로니 전략
옌스 바이트너 지음, 배진아 옮김/더난출판사
게임회사 이야기
이수인 지음/에이콘출판

Comments

“불량의 사내 정치술”의 8개의 생각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인용 했음을 알려드리려고, 트랙백을 하려고 했는데.. 안된다는 메시지가 나오네요. (티스토리에서)

  2. 핑백: Younghoe.Info
  3. 여전히 멋진 필력이시군요.. 잘지내시죠? 퇴사전에 밥한번 먹기로 해놓고, 전화드렸더니 없는번호라고 하는말에 멍했습니다. -_-;
    가끔 너무 우울할때 Goodhyun님 글 읽으면 좀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님글에 아주 크게 위로받는 Fan이 있으니 글도 자주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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