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Life Caching

Life Caching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파이널 컷(Final Cut, 2004)에서 시민들은 스스로의 일생을 고화질 비디오 스트림으로 녹화하게 된다. 디스토피아적 근미래를 다루는 영화 한 편일 뿐이지만, 이 영화에서 우리는 한가지 뜻밖의 교훈을 얻게 되는데 그 것은 기억이란 반드시 미화되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기억이란 자동적으로 미화되어 그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양심의 각색에 의해 실제보다 더 왜곡된 상태로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러한 리스크 때문에 우리는 추억을 대상화, 객관화할 매체를, 즉 사진이나 편지 등을 모으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기 위해 사물이란 도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기념품이라던가 유품도 결국은 그러한 효용이 있기에 우리 곁에 두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엄청난 효율로 이 효용을 대신 해낼 수 있는 법이 있다면 어떠할까? 굳이 어떠한 사물을 통해 우리의 지나가 버린 삶을 되새기는 대신, 현재의 우리 삶 중 아름다운 부분을 그냥 어딘가에 잠시 담아 둘 수 있다면 매우 효율적으로 아름다운 기억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과 유비쿼터스 단말들은 이렇게 기억을 미화하는 대사 작용에 매우 효과적인 방편을 제공하는데, 싸이 미니홈피, 블로그, 그리고 각종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들처럼 삶을 잠시 담아 두는 이 일을 ‘라이프 캐싱(Life Caching)’이라 부른다.

컴퓨터에서 캐싱이란 더 효율적인 액세스를 위해 정보를 잠시 담아 두는 일을 말한다. 라이프 캐싱은 가볍게 폰카로 스냅을 찍어 일상을 공유하려는 트렌드가 상징하듯, 삶을 영원히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은 세속적 욕망이 잠시 담길 곳을 찾아 준다. 일상을 찍어 모으는데 그치지 않고 기억하고픈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싸이에 비친 타인의 일상은 그렇게도 완벽하고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이다.

여기서 소비 산업의 응용 일례를 볼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만들어 체험하고 과시할 수 있다면 그 동안 그러한 역할을 해 왔던 물리적인 상품, 예컨대 명품의 역할이 라이프 캐싱에 의해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이 지닌 명품 핸드백이 주는 매력보다 강력한 효과를 한 장의 싸이 사진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 개개인의 일상에 포함된 다양한 사후의 기록들은, 그 사건 사물이 마케팅된 명품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읽고 보는 이들에게 부러움이라는 강력한 가치를 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가치 전달은 앞으로 그 캐싱된 사건 사물을 직접 체험하고 싶게 만듦으로써 광고나 마케팅이 해왔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캐싱되고픈’ 어떤 가치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소비 경제에 중요한 테마가 될 수 있다. 라이프 캐싱에는 이러한 제네레이션 C(Creativity, Content, Caching)의 경제적 효용이 숨어 있는 셈이다.

 

(본문은 LG엔시스 사보 2006 5/6월호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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