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1.0의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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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 독자들도 계시겠지만, 몇 달 전에 developerWorks에 실린 나의 인터뷰 도중, 인터뷰어의 어떤 질문에 나는 무려 약 1분 가량 말문이 막혀버린 일이 있었다. 얼굴 맞대고 앉아 있을 때, 1분은 의외로 길다.

돌이켜 보면 인터뷰어가 미녀라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 같기도 하지만, 실은 정말 말문이 막혔기 때문이다.

질문이란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이었다.
질문을 받은 순간 세기말의 추억이 주마등같이 흘러 갔다.

실패한 닷컴의 추억.

하고 싶은 말이 3시간 분량은 된다.

그러나 나는 중후장대 파란만장의 실패담을 뒤로한 채, 실패하지 않은 SI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닷컴 버블의 고조기에 IBM으로 이적한 후, 이상계에서의 추억은 잠시 접기로 하고 현실계에 전념하듯 살아 왔다.

기획하고 개발한 닷컴들은 대부분 국내 최초였지만, 초장에 대파 당하거나 지리멸렬한 여생을 억지로 보내며 결국은 지금 모두 사라져버렸다. 프로그래머라면 자신의 프로그램이 더 이상 무의미해질 때 적잖은 허탈함을 맛본다. (윈도우 등장 시, 수많은 DOS 개발자가 그랬듯이) 마찬가지로 닷컴 플래너라면 닷컴이 “서버를 찾을 수 없거나 DNS 오류입니다.”가 될 때 맛보는 허탈함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적지 않은 것이다.

나는 실패를 이력서에 적지 않았다. 실패를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근 웹 2.0적 상황에 여러모로 얽히게 된 이후, 실패란 숨겨야 할 일이 아님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오히려 그 때의 실패 그 자체를, 실패의 원인을, 실패의 그 슬픔을 몸소 느낀 경험이야 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2.0이란 1.0에 덧셈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니까.

  • 국내 최초의 SOHO 지원 커뮤니티 서비스 & 그룹웨어…
  • 국내 최초의 프리페이드 소액 결제 시스템
  • 국내 최초의 “합법적”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굿바이 미숙했던 날들, 굿바이 웹 1.0

Comments

“웹1.0의 이력서”의 8개의 생각

  1. 0과1로 디지털화 되어 있는 프로그램세계에서 오프라인 세대의 감성적 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이 교차하는 공간이 바로 이곳인거 같아요. 뭔가 진한 인간냄세가 풍기는 곳.. IT에서 일하는 사람만이 이 느낌을 알겠죠..? 항상 최신 기술을 쫓지만 그 이면에 강한 인간애도 가지고 있는. 이런 IT 하는 사람들.. 참 매력적인거 같아요. 힘든 직업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IT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이유중 하나죠.

  2. 그래도 자기것이 있다는게 부럽네요
    요즘 내껀지 남의껀지 모르는 일을 하다보니…
    “Do Somthing”하고 “침 바르다”가 동의어인지 깨닫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비즈니스 모델은 다른 회사들이 팔고 있고,
    회사에서는 아직도 니 일은 뭐내 내 일은 뭐니 싸우는 소리를 옆에서 들어가며 살고 있네요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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