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IT] APPLE ][

청계천 세운상가.

그 곳은 싸나이의 로망이 숨쉬는 곳.

각각의 로망은 각자의 추억.

오늘날 21세기의 학동들이 갖가지 학원에서 자아를 형성할 무렵, 나는 세운상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어찌어찌 해서 청계천판 애플 (복제)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단골가게의 아직도 기억나는 약간 통통한 ‘언니’는, 나에게만 특별히 게임을 하나 복사하면 덤으로 하나 더 복사해 주곤 했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당연하지만 그 당시의 컴퓨터는 하나도 당연한 것이 없다. 한글은커녕 소문자가 찍히는 것 조차 이노베이션이라 할 수 있던 시대였으니까.

지금은 전 지구를 헤매고 다니며 신나고 재미있는 것을 다운받으면 되지만, 당시는 ‘컴퓨터학습’, ‘마이크로소프트웨어’ 그리고 몇 가지의 값비싼 외국 잡지들이 정보의 전부였다.

읽고 또 읽고. 그 곳에 “투고된” – 당시는 독자들이 투고한 프로그램의 소스를 그대로 프린팅했는데, 자신의 프로그램이 게재되는 것은 나름대로의 영광이었고, 이는 많은 이들을 분명 자극했다. –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입력하고, 에러가 나면 밤새워 뭘 잘못 타이핑했는지 확인했다.

지금보다 훨씬 미개한 기술의 세계에 살았지만, 모두 기술에 대한 흥분이 있었다. 무언가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과정에 동참할 수 있었으니까.

자신이 짠 프로그램이 투고에 성공해,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프로그램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된다는 것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다.

그 흥분을 많은 이들에게 가르쳐 준 것, 바로 그 컴퓨터다.

………………………………………………………………………………………
<낭만 IT> 이제, 컬럼, 만화에 이어 에세이??

Comments

“[낭만 IT] APPLE ][”의 18개의 생각

  1. 20년도 더 된 이야기군요..^^
    세운상가에 갈 때에 야한 사진 강제로 사라는 깡패(?)들 무서워서 꼭 친구들이랑 우르르 갔던 기억이 나네요.

  2. 국민학교 4학년때 처음 만져본 컴퓨터군… 너무 비싸서 사달라고 하지도 못하고, 학원에서만… 자판이 고무로 되어있고, 옆에 테잎 레코더가 달린 것도 있었는데, spc였는지 뭔지…

  3. 아 매장같은데서 apple진열해 놓은거 보면 랩으로 다 씌워져 있었다구요 ^^; 책이 아니라…

  4. 처음 집에 애플이 들어왔던게 83년도 였는데 위의 그림에서 언급한 저 위에 딱 맞는 모니터를 사용했었어요. 인상적이었던건 나중에 플로피 드라이브를 아빠가 사오셨는데(지금 5인치 드라이브의 딱 두배크기죠) ‘이게 컴퓨터 보다 비싼거야’라면서 본넷(?) 뚜껑을 열어 FDD Controller 카드를 슬롯에 끼웠던 기억이 나네요. 요즘은 슬롯번호가 중요하지 않지만 예전엔 ‘pr#7’하면 7번 슬롯에 달린 FDD가 부팅되었죠. ‘로드런너’는 Paddle로 아빠랑 2인용을 해야 제맛이었구요.^^

  5. 핑백: lunamoth 3rd
  6. 핑백: beastgood+blog
  7. 석영 컴퓨터란 회사의 멜론이라는 제품이 기억납니다. 애플2랑 그 겉모양이 똑같은 호환기종이었죠.

  8. 옆에 테입드라이브??가 달린 것은 SPC-1500입니다. SPC-1000은 MSX 호환기종이었을 거에요. FC-80, FC-150 따위의 금성 컴퓨터도 생각나네요. 전 남들 다 MSX(IQ-1000!)살때, CPU가 빠르다고 SPC-1500을 샀다가 망했습니다.. 아.. 그때부터 지속되는 스펙병, 장비병…(MSX가 3.77mhz, SPC-1500은 4Mhz.. 동일한 Z-80 CPU))

  9. 위에 분이 언급하신 SPC-1000은 MSX호환기종이 아닙니다. Z80 CPU들어간 놈으로 Hu-BASIC이 탑재되어 있었습니다.

  10. 부럽네요. 촌놈이라서 컴퓨터는 정말 그림의 떡이었어요. 그래서 프로그램도 꽝이에요…

    대신.. 과학 잡지는 많이 봤는데.. 월간과학 뉴튼이라고. 저도 거기에 투고해서, 제 이름이 실렸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합니다. 국민학교 5학년때 였나. 인공위성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었는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