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돈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교환 매개물이라던가 가치 저장의 수단이라던가 경제학에서 말하는 화폐와는 별도로, 관념으로서의 돈에는 게임의 논리, 그 중에서도 Score의 개념이 숨어 있다.

TV 프로야구 중계 점수표의 숫자처럼, 우리는 개개인의 경쟁 게임 속에 돈이라는 Score를 삽입하고 있는 것이다. “반자본주의=무경쟁”의 등식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도 화폐로서의 돈이 아닌 Score로서의 돈이다. 사실 동료와의 월급 차이로 인해 삶의 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언가 게임에서 진듯한 묘한 패배감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Score로서의 돈이 주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Score가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이 세계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불평등을 해소할 명쾌한 방안을 인류는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Score는 불공평을 은폐한다. 예를 들어 열등한 팀이 월등한 팀에게 이기고 있다면 그것은 “이기고 있는 것”이라는 게임의 인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아니 모든 생물은 태생적으로 불공평함을 벗어날 수 없다. 혹자는 사자로 태어나고 혹자는 바퀴벌레로 태어난다. 환경적으로 그리고 유전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인류는 이 차이가 주는 불편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가 어찌 이것을 극복할 것인가? 차이를 극복하게 해 줄 평형자(Equalizer)가 고안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그 불편함을 벗기 위해 우생학과 같은 상상마저 하고 만다. 심지어 차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가치는 태생적으로 결정될 수 밖에 없음이 전제된다면, 하층민을 생물학적 열등요소로 치부해 사회적 책임을 전가하여 기득권을 수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히틀러처럼.

이 두려움을 아는 이들은 끊임없이 평형자(Equalizer)를 찾게 되었고, 결국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관념이 게임 Score로서의 돈인 것이다. 내가 보는 자본주의의 원점은 여기에 있다.

상과 하에는 돈이라는 치환가능한 Score의 차이만이 존재한다고 규정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꿈이 생기게 된다. 돈이라는 획득 가능한 지표가 생김으로서 공평함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쟤가 비록 나보다 이쁘고 똑똑하지만 나는 쟤보다 돈이 많아.”
“지금은 이 모양이지만 머지 않아 달라질 수 있을거야. 부자가 될거야”

이런 망칙한 상상은 Score로서의 돈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유희인 것이다. 그런데 인류는 이 유희마저 불편해하곤 한다.

그것은 불공평한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또 다른 불공평을 용납치 못하는, 즉 공평함의 이상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인류가 스스로에게 주는 역설인 것이다.

그러나 더욱 역설적인 것은 인류는 원해서 태어난 것도, 원해서 죽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생의 차이가 돈으로 극복되어도, 언제찾아 올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불공평한 공평앞에서는, 이 생을 “부조리”라고 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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