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s about] 나이

ACT 001. goodhyun talks about 나이

내가 매우 어릴적,
Mother는 나에게 특이한 논리를 가르쳐 주었다.
“사나이라면, 나이차 7년은 친구라 생각해야 한다.”
이 “7년의 법칙”은 어린이의 백지같은 심층 심리에 깊숙히 각인되었다.

그녀가 무슨 의도로 이러한 반사회적 규범을 주입했는지 모르나, 당연히 나는 이 가르침 덕에 꽤나 험난한 학창 시절을 보내야했다. 7년의 법칙을 교조적으로 따르는 말도 안되게 건방진 후배와 이에 기가찬 선배들과의 옥신각신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서클 활동마다 건방진 나를 못마땅해 하는 선배와 싸우는 일은 웃음이 나올만큼 많았다.

보통, 한국 사회에서 1년의 차이는 엄청난 격차에 해당한다. 선배에게 깍듯이 공손한 존대말을 쓰고, 또 후배에게는 마치 자기 식솔이라도 대하듯 막 대하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그러나 “7년의 법칙”에 비추어 보자면, 이는 생애의 친구를 사귈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친구의 폭을 좁힐 뿐만 아니라, 장유유서로 자동 설정된 전근대적 우월감에 도취되어 정신의 기성화를 서두르게 한다. 이 순환은 집단적으로 반복된다. 잘게 나뉜 계층은 세대간 위화감을 조장하고 또 파벌을 만든다. 아니, 같은 해에 태어나야 친구라니,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세계 어디에 있는가.

유난히도 나이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나자 마자 몇살인지 묻는다던지, 학번을 묻는다던지 등등 “민쯩 까보는”일에 의외로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바로 상하를 규정하여 반말을 하거나 형님이라 부른다. 타인과의 서열을 정할 절대값으로 나이만큼 간편한 것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그렇게 서열을 정해 무얼하고 싶은건지 되묻고 싶다. 적어도 친구가 되려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서열을 먼저 정하고 친구가 되고 싶은 일은 없을테니까.

나는 반말도 경어도 포함한 우리말을 좋아한다. 반말은 상대에 대한 친근감의 표시이지, 하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믿고 있다. 경어도 나이 많은 이들을 위함이 아닌 서로 예를 지키고 싶은 이들을 위함이라 믿고 있다.

누가 나에게 반말을 하면 같이 반말을 하자. 그저 친구가 되고 싶은거니까.
누가 나에게 경어를 쓰면 같이 경어를 쓰자. 그저 예를 지키고 싶은거니까.

나에게는 위아래 7년의 친구들이 있다.
70대 장로와 10대 철부지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회, 언젠가 우리 사회도 그런 열린 사회가 될 수 있으리라 나는 늘 믿어왔다. 7년의 법칙이 언젠가는 70년의 법칙이 될지도 모른다며, 망상에 빠져있는 것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어려서 듣는 말한마디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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