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의 논점] 왜 우리는 오늘도 야근을 하는가?

한국은 그 낮은 생산성과 긴 야근으로 유명하다. 

OECD 평균을 420시간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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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근로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1년 기준 29.75달러로 OECD 평균(44.56달러)의 65.5% 수준에 불과

왜 그런데 우리는 오늘도 또 야근을 하는가? 물론 어느나라보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전후로 하여 쾌적하고 느슨한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고, 또 정직원의 야근수당이 탐나서 엉덩이가 무거워졌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는 정말 바빠서 야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짜로 밤이 되도 일이란 것이 끝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나의 일이란 끝나지 않는 것이기에 적당히 끊고 가는 수 밖에 없고, 집에 와서도 적당히 잘라낸 일이 마음에 걸린다. 이 찝찝함이 심해지면 주말에도 출근하게 된다.
때로는 자발적으로.
그렇게 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퇴사하는 날까지. 
 
그 주범은 무엇일까?

기업의 가족 주의적 문화는 손쉬운 용의자다. 원래 가족이란 서로에 대해 무한의 책임을 갖는다. 쩔쩔매고 있는 동생이 있다면 형이 나서는 것이고, 형은 기꺼이 동생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기도 한다. 한국 대기업의 사훈에 대개 가족을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등장하는 이유이다.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며, 가족이 나를 버리는 일이란 것은 차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혈연이 아닌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에 대한 충성을 결의할 무언가를 서로 확인해야만 한다. 

단체기합, 철야행군, 극기훈련 등은 기본소양 교육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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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종 금융사고에서 한 발 빗껴 있는 신한은행은 신한만의 조직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기업 문화는 호모소셜한 집단을 형성하게 되고, 급기야 JD(Job Description)를 필요로 하지 않는 채용 문화, 예컨대 공채라는 풍토를 만들어 낸다. 내가 무슨 일을 하러 이 회사에 들어 가는지 알지 못하고 들어 가는 것이며, 사측도 일단 가족의 자격이 되는 이들을 받아 들이고, 이들이 무슨 인재로 커 갈지 두근두근 모르는 상태가 된다. 이 미묘한 의형제적 관계의 긴장감은 ‘자기 일 끝났다고 집에 가는’ 일을 본질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 회사에 들어 올 때의 계약이란, JD에 의한 쌍무적 계약이라기보다도 “가족적 무한 책임”하에 소속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구에도 스타트업이나 ‘파트너’ 등 이와 같은 ‘가족적 무한 책임’과 ‘주인 의식’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진짜 파트너이자 진짜 주인인 경우다. 한국의 특수성이란 그 많은 임직원이 주인도 아니고 파트너도 아니지만 의식만큼은 이에 걸맞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가족적 무한 책임은 계열 기업집단으로 확장되며 촘촘한 끼리끼리 하도급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 가족이 되지 못한 이들, 적자가 아닌 서자(비정규직)들은 더 없이 살기 힘든 특수성을 지닌 사회를 만들게 된다. 

사실, 되지도 않는 전문성을 가지고 저녁내내 끙끙대느니 그 때 그 때 전문가를 고용하고 해고하면 되지만 구조상 쉽지가 않다.
비용은 정직원 채용과 내부 거래 프로젝트용으로 충당되다 보니 혼자 밤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끼리끼리 다단계 하도급은 흥하지만 역으로 B2B 직거래 서비스업은 흥하지 못해, 기대했던 ‘낙수효과’도 잘 보이지 않고, 사회에 축적되는 전문성은 떨어진다. 

그런데 한반도의 역사에 있어 한국인이 과연 이러한 인위적 가족 집단을 만드는데 탁월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조사해 봐야겠지만 지극히 20세기적인 일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서구적 시민사회식 근대화를 거치지 않고 자본주의로 급이행한 시기의 기억이 21세기의 지금까지 잔존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운 일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여러분의 야근이 위와 같은 이유에서 한국 경제의 혈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여러분이 오늘 야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 또한 아니라는 점이 씁쓸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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