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보장하는 것

자본주의란 것은 참으로 신기한 요물입니다. 
자본주의의 구성요소인, 이 주식회사란 것, 
최대 아니 절체절명의 목적은 ‘오로지’ 주주의 이익입니다. 공공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 사이에서 주식회사는 본능적으로 아니 존재론적으로 주주의 손을 잡습니다. 
이 따위 불공평하고 비정한 시스템, 
진작에 무너져 내려야만 했을 것 같지만.
그런데 이 것이 의외로 잘 굴러 갑니다.
21세기의 혁신은 대개 자본주의하 주식회사의 형태로 영글어져 왔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창의력과 동기부여의 스위치는 바로 이 인간의 치사한 욕망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욕망이란 것, 끝을 잘 모릅니다. 게다가 주주란 잘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베일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우리 모두일 수도 있습니다. 이 익명성과 보편성 덕에 자유자재로 팽창하며, 스스로의 팽창을 위해 모든 것을 삼킬 수도 있게 됩니다. 여기에는 정치도 포함됩니다. 자본주의의 대표 국가 미국만 해도 부시행정부와 오바마행정부의 지난 행적이 – 전쟁은 물론 오바마케어도 – 자신에게 정치헌금을 준 업계에 대한 보은임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그러나 이리도 잔인하고 불완전한 제도임에도 불구, 아직까지 자본주의의 대체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가능성을 100% 끌어낼 수 있는 힘, 바로 ‘자유’를 가장 잘 보장해 주기 때문입니다. 

“너도 선수인 이상 충분히 반칙할 수도 있어. 열심히 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퇴장이야.”

이것이 자본주의라는 게임의 법칙입니다. 대마불사가 아닌 엔론과 리만의 법칙입니다. 그리고 이 대사를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정부입니다. 그렇지만 이 자유의 책임과 대가를 묻는 역할도 자본주의 속에서는 뭉게질 수도 있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를 봅시다. 대개의 정부는 자신의 당선을 위한 보은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원주~강릉 철도 등 SOC 사업 위주의 ’30대 선도사업’을 추진하면서 22조 원 규모의 신규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이 체제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또 다시 
‘우리 스스로의 가능성을 100% 끌어낼 수 있는 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가능성이란, 바로 우리 스스로가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 가능성, 이걸 끌어낼 자유입니다. 

정부가 주식회사처럼 되려 하거나, 주식회사가 정부처럼 되려 하는 일
선수와 심판이 뒤엉켜 한방향으로 우르르르 공만 좇는 이상하고 재미없는 게임.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차례 다룬 다양한 부조리들, 하다못해 공인인증체제…

이런 일에 NO라고 이야기하는 자유,
우리 사회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자유,
그리고 실제로 
선거로, 시민운동으로, 혁신기업으로 사회와 미래를 바꾸어 가는 자유. 

지구촌 어느나라보다도 자본주의화되어 버린 한국에 사는 우리 
오히려 이 자유의 힘을 종종 잊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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