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인정하고, 차라리 학력고사로

한국 사회에서 교육 문제란 의외로 수많은 현상의 원인이 됩니다. 

자녀 사교육의 부담은 회사 인간을 양산하고 있으며, 왜곡된 부동산 시장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한국 근현대에 있어 교육이야말로 가장 저비용이자 그리고 효과적으로, 또한 사실상 유일하게 신분을 교환할 수 있는 기재였기 때문이겠지요. 게다가 이 욕망과 효과를 국민 모두가 목격해 버렸습니다.  

구라파 어느 나라들처럼 참교육이 실현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그 나라들의 지난 100년의 합의의 결과입니다. 자신이 잘 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고 살면 잘 살 수 있음을 한 라이프사이클 동안 목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 의식’을 통해 함께 살아 가는 사회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가지게 되었기에 그러한 교육 제도가 형성된 것입니다. 

In Norway and Scandinavia the idea of solidarity and beauty may have been emphasized more than in most other countries. Solidarity has not only been limited to sharing money or property, but also applied for education and knowledge as well. Knowledge has been regarded as a common “social capital” that should be shared and easily accessed by everybody, independent of ability, social status or family income.

즉, 한 사회의 풍토는 많은 경우 그 사회가 겪은 근 100년의 역사가 형성하는 셈인데, 한국은 안타깝게도 조건이 달랐습니다. 
압축 성장을 해야만 했던 한국은 균질적(homogeneous) 경쟁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교육이란 시스템은 바로 위에서 언급된 연대(solidarity)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도 되어주지 못합니다. 대신 학벌이 일종의 시그널링, 즉 출세와 생존의 멤버쉽 카드가 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팽창하던 시절, 관료와 정규직으로 세이프시키기 위해 인재를 거르던 채였습니다. 

인간의 내면과 내공을 직접 파악할 줄 모르는 다급하면서도 게으른 체제는 그렇게 학벌을 신호등으로 삼습니다. 여기에 세이프되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이 겪는 모든 불합리와 불편이란, 능력과 반드시 연관된다는 보장도 없는 바로 그 시그널 탓이라 여길 수 밖에 없는 ‘한’의 교육관이 형성됩니다. 

이 감정은 우리 사회가 우리 사회의 다른 모습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해소될 수 없습니다. 
이를 무시한 채 아무리 교육 제도를 바꿔 봐야 매년 이런 뉴스만 볼 뿐입니다. 

2011년…

서울 지역 전체 합격자의 42.5%를 차지했다. 최근 3년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2012년…

내신반영 비율이 높아 특목고 학생들에게 불리하다고 알려져 있던 서울대학교의 수시모집에서도, 과학고·외고·자사고 등 특목고 출신 합격자가 강세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2013년.

서울대가 정시 선발을 확대하기로 함에 따라 특목고는 물론, 일반고에서도 강남 지역 학교에 대한 쏠림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일단 이런 류의 정보 들이 뉴스가 되고 [단독] 보도가 되는 나라이다 보니, 확대재생산이 되며 되먹임이 일어납니다. “오오, 안되겠다. 그리로 이사가자!”, 혹은 “제도에 손을 대자!” 그 결과 대학 가는 방법이 삼천 가지가 넘는 나라가 됩니다. 이것이 다양성을 보장해 주면 좋았겠지만, 보장되는 것은 이에 편승한 입시 컨설팅 뿐. 결국은 ‘종합 매니지먼트력’을 지닌 부모의 힘이 당락의 주요 요소가 되는 기이한 교육 시장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공정한 룰과 역전 찬스가 제공되던 교육이라는 ‘경쟁’은 사라지게 됩니다. 

입시제도만 외국처럼 바꾸면 그 나라와 같은 이상 사회가 완성될 것이라 믿는 어리석음이, 
전례 없는 불공평 사회를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아이의 체력”이 중요하다 자조하는 교육이 아닌 사육 시장이 태동됩니다. 

적어도 학력 고사 시대, 모든 학교에서는 팔도 사투리가 골고루 넘쳐났고, 다양한 소득 분포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만점자가 올해처럼 33명이나 나올 정도로 만만하지도 변별력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한국의 연대와 사회적 자본 수준에는 학력고사로 충분한 것입니다. 

위와 같은 뉴스가 나오지도 않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 사회, 
대학은 정말 학문을 좋아하는 이들만 가도 되는 사회,
누구나 “자신이 잘 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고 살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 
우리는 만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런 사회에 대한 신기루를 3천 가지의 입시 뒤로 숨긴 채, 
공교육도 학생들도 부모들도 사막이 되어 갑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비겁하게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고뇌하지도 않고,
오늘도 학원 버스에 아이들을 태우고 있습니다. 

Comments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