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 속의 일제시대

제68주년 광복절. 어제는 오픈넷 시민학교에서 강의 중에 관련된 이야기를 어찌 하게 된 것이 있어 여기에 다시 적어둡니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제시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2013년 현재 우리의 팍팍한 삶이란 의외로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낡은 정서가 만들어 낸 것임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된 이토히로부미. 일본 헌법을 만들고 일본 근대화를 이뤄낸 인물로 자국에서는 한 때 천엔 화폐 모델이기도 했었던 인물. 그가 만들어낸 근대의 일본이란 강한 관료주의의 나라였습니다. 그가 만든 메이지헌법은 일왕이 ‘통치권을 총람’한다며 권위를 지켜주고, 국회를 꾸리고 의회제를 만들어 법치국가의 코스플레를 합니다만, 실질적 권력은 자신을 포함한 번벌'(藩閥), 즉 관료에게 성공적으로 이양하게 됩니다.
이토히로부미는 당시의 민도로는 의회제에 입각한 국정운영은 힘들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분명히 말도 안되는 토픽만을 가지고 당쟁만 하다가 끝날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국회가 파탄났을 때, 일상의 내정을 묵묵히 수행하기 위한 국가 운영 체제를 설계합니다. 가장 먼저 한 일도 제국대학을 설립하여 ‘개천에서 용나는’ 일을 보장하고, 자신이 신분을 뛰어 넘어 초대 내각 총리가 된 사례를 선보이며 강한 엘리트 관료 시스템을 설계하고 그것을 근대화의 요체로 구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책임과 국민적 공분을 성공적으로 의회로 돌릴 수 있게 되고, 그 화살을 일왕과 관료는 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여전히 뉴스의 정치면은 정당간의 옥신각신과 코미디를 중계합니다만, 권력의 사실상 실세는 정치가들을 꼭두각시 삼아 강한 기득권을 만들어 갑니다. 제국 대학과 그 유사품 및 고시를 통해 양성된 관료들은 관료-의원-업계로 이어지는 관변 클럽을 만들고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카르텔을 만듭니다. 이론적 배경을 위해 학계가 포섭되기도 하고, 여론 조작을 위해 미디어가 투입되기도 합니다. 3각, 4각, 5각의 관변 클럽은 그렇게 정권을 초월해 생존해 나갑니다. 번벌에서 시작된 학벌, 재벌 등 다양한 ‘벌’은 강한 관료주의의 원인과 결과가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들의 관심은 의회제가 마련한 이종격투기의 링 위에만 놓여 있습니다. 
지금도 정치면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국가를 움직이는 흐름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을 누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내리게 되었는지, 그 최종 책임은 어디에 있고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모호함만이 남게 됩니다. 심지어 법률조차 관료가 만들 정도로 삼권분립이 위태로운 국가, 즉 이토히로부미가 결과적으로 일본열도와 한반도에 만든 것은 거대한 무책임의 시스템인 셈입니다. 행정과 정치는 적절히 유착하며 의원정족수라던가 공무원연금개혁 같은 민감한 문제는 서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사법뿐입니다만, 한국은 대표적인 사법소극주의의 나라. 당사자가 시민운동을 하거나 소송을 할 수 있으련만,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한다며 관료가 나서 수많은 업법(業法)을 만듭니다. 규제 왕국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관변 클럽을 유지하는 묘책이었습니다. 지금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악수를 어딘가의 호텔 조찬회라던지 골프 코스, 저녁 모임에서 하고 있겠지요. 그리고 다양한 정부산하단체 및 공기업으로 외연을 확장한 강한 관료제는 수많은 진흥책을 남발하며 정책자금 및 국가프로젝트로 또 다른 관변 클럽을 만들어 갑니다. 이 관변 클럽의 결정이 불합리하거나 납득이 잘 안가도 분위기를 망칠 수 없으니까 묻어갑니다. 소외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거대한 무책임의 시스템 뒤에는 시장을 통해 검증되리라 믿으며 묵묵히 혁신을 하는 소박한 모험가 정신 대신, 어떻게 하면 정부 자금을 타낼까 어떻게 하면 정부에 의해서 키워질 수 있을까 하는 ‘마마보이’ 정신이 자리잡고 사회적 통념이 됩니다. 재벌도 그렇게 큰 것이 아니냐며, 왜 스타트업은 ‘눈먼 돈 좀 먹을’ 수 없냐며, 이러한 일이 독거노인을 살릴 수 있는 국민의 세금을 축내는 사회적 횡령임을 인지하거나 죄의식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 사회복지 지출은 엄청나게 작아 공적 서비스 및 부의 재분배 기능에는 취약하지만, 규제 및 진흥과 같은 티나고 폼나는 ‘완장’의 역할만은 매우 강력한 ‘큰 정부가 아닌 큰 정부’가 완성됩니다. 
일제로부터는 68년전에 광복을 맞이했습니다만,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 낡은 정서로부터의 독립운동은 아직 시작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도 지금도 누구나 먹고 사는 일이 힘들어 독립운동 같은것 좀처럼 하기 힘들겠지요. 삶이 너무 팍팍해서 말입니다…  

Comments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