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on d’etre

‘font maniac’에 보여준 성의에 보답하고자
폰트의 존재의미란 무엇인지 생각을 공유해 보려 한다.

# 폰트란 위대한 equalizer, 즉 평형 장치다.

1987년 처음 잡지에 글을 쓸 때, 나는 원고지에 내 ‘글씨’로 글을 썼다. 그 글씨는 ‘활자’가 되어 ‘지면’에 실렸다. ‘글씨’에 갖혀 있던 사적인 자아는 ‘활자’가 지닌 특권성에 의해서만 사회와 접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활자’의 통로가 상당히 한정적으로 허락된다는 점. 그리고 그 허락은 사회내 지식 시스템의 임의적 판단에 의한다는 점이었다. ‘활자’로의 변신 가능성에 본의 아닌 귀찮음을 느낀 이들은 ‘글씨’를 쓰지 않게 되었다. 쓰지 않는 자 급기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활자’가 구축한 기득권 지식 사회의 성곽이었다.

사건이 생긴다.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 그리고 ‘폰트’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지식을 축적하기 시작한다. 왜? ‘폰트’는 사유(私有) 활자였다. ‘활자’化의 쾌감이, 그 마약같은, 지속적인, 뇌리에 전율할 흥분이 대중에게 퍼진 것이다. 지적 마스터베이션이었다. 곧 다가올 지식의 시민 마라톤 대회를 위한 지적 체조였다. 지금 그리고 오늘, 폰트로 글을 쓰는 일이 만인의 일상이 된 인터넷 시대. 지식의 흐름은 전례 없는 완전한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이러한 해방의 근본이라 할 지식의 흐름을 가능하게 한 공(功), 네트워크에 있다는데 아무도 토를 달지 않지만…

‘활자’가 지닌 폐쇄적 특권의식에 수류탄을 투척한 장본인은 ‘폰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폰트의 존재에 집착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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