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의 논점] 왜 공인인증서는 사라지지 않는가? - 공인인증서가 상징하는 것

goodhyun's 분류없음 on 2014/03/20 11:52


공인인증서는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zetlos Sean Shin @zetlos
공인인증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규제를 푼다고. 안 믿슴다.

공인인증서가 쓰기 불편하다거나 혹은 오히려 보안에 취약했다는 논리도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명제란 실제 다른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의외로 절대적 입증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입증의 권한은 전문가에 위임되고 그 전문가는 정부가 선정한다. 이른바 어용(御用)의 구조다. 허나 실제로 '더럽고 귀찮은' 국지적 특이성 덕에 해킹을 안한 글로벌 해커가 한 명이라도 존재했다면, 이 제도는 그 기능을 다 했다 주장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논쟁의 평행선은 10년 넘게 지속중이다.

그런데 이런 예를 들어 보자. 집집마다 300kg의 강철문을 달기로 했다고 하자. 목재는 언감생심, 알루미늄도 안되고, 300kg보다 모자라서도 안된다. 모든 집에는 300kg의 강철문을! 실제로 300kg의 위압감은 도둑을 귀찮게 했을 수도 있다. "하하하, 어느 누구도 현관으로 들어 올 수는 없었어!" 라며 철강회사와 창호회사와 규제당국은 기뻐했지만, 이미 도둑들은 다른 창문으로 넘어 다니고 있었고, 300kg의 무게 덕에 건물의 구조는 뒤틀리고 있었으며, 문을 달기 부담되어 신축건물도 생기지 않게 되었다. 미장원을 개업하려 했더니 300kg 철문 설치공문이 온다. 당국은 300kg의 산업이 일군 철생산량만 홍보하기 바쁘고, 그 덕에 사라진 기회의 가치와 분산된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취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아무도 열고 싶지 않은 300kg의 철문이 달린 오래된 유령 건물만이 남아 있게 된다.
  
모든 효과에는 비용이 있다. 그러나 어떤 효과만이 절대적 가치로 선언되고, 그 비용은 계산되지 않는다. 이 부조리가 한국 사회에서 수시로 목격되고 있다. 공인인증서 문제는 사실 이 부조리의 플랫폼, 관제담합의 상징인 것이다.

각 중앙부처는 관할하에 산하단체를 두고, 이들을 사실상 독점 하청 상태로 운영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시 관변의 민간 업체가 하도급으로 배치되며 다시 이를 굳히는 아교풀처럼 어용 교수들이 논리를 강화해준다. 그리고 이 굳어 버린 담합의 구조는 관료 자신의 자리를 지켜줄 보루이며 후일 낙하산이 착륙할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공인인증서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비용대 효과를 도외시한 규제로 300kg 철문을 사회 곳곳에 찍어내는 구태의연이 세금과 공복에 의해 온존하며, 새로운 혁신은 물론 기존의 시민 생활을 방해하고 있지만 이를 10년 이상 자신있게 방치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관치사회주의적 성향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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