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트는 통계청 통계를 토대로 지난 20년간의 연령별 취업자수를 그려 본 것.
사회의 주축이 되어야 할 20~30대 취업자수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내리막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여러 사회적 영향(IMF시기의 움푹파임에 주목, 대학입학 증가, 졸업 안하는 5학년생 증가) 등등에 의해 경제활동인구도 따라 변화되는 등 다면적 효과.
이 차트는 어느 해당년도의 젊은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선을 옮겨탄다는 점을 고려 상상력을 발휘하여 동적으로 읽어야 재미 있다. 한번 상승 곡선에 있었던 연령군은 계속 상승 곡선을 탄다.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를 둘러 보면 놀랍게도 특정 연령대가 굉장히 두터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업의 규모가 커질 수록 사회 전체의 통계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두드러질텐데…
역삼각형의 취업자수와
정삼각형의 조직구조.
조립해 보면…
여러분 선배들의 두터운 연대(連帶) 덕에 어떻게 들어 가도 승진하기는 꽤나 어려울 것. 상황이 어려우면 제일 먼저 하는 일도 “신입 초임 삭감”인 똑똑한 선배들이니까. 이 정도는 체감하고 예측하고 있어야 청춘. 1명의 대리가 5명의 차, 부장을 모실 각오쯤은 하고 원서를 쓰는 것이 좋겠다.
하는 김에 정규직과 기타 비정규직/한시적/시간제/비전형이 모두 나와 있는 연령/근로형태별 취업자 데이터도 열어 보았다. 2003년분부터 밖에 없는 듯한데, 아래와 같이 “전체 job의 파이”를 나누어 보면 10년도 채되지 않은 사이에도 나름 변화가 있다. 변화는 대부분 정규직에서 있었는데…
대한민국은 확실히 어른들의 나라였다. 이상.
세금에는 부의 재분배 기능이 있다. 부자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이를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면 된다. 그런데 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일이 실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확실히 효과적으로 부자를 찾아 내고 확실하고 정확하게 가난한 이들에게 분배할 수 있을 것. 그러나 이 중요한 일이 실은 매우 위태롭고 통제하기 힘든 조직들에 의해 일어난다. 현재 한국의 세금이 강바닥 흙에 뒤엉켜 가라 앉는 모습을 보자니, 그 불완전성은 기정 사실이고, ‘고소득 탈루’로 검색해 보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을 볼 때 부자일 수록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운 듯하다. 유리지갑 근로자의 사회부담금이 고소득 자영업의 2.5배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부의 흐름(flow)에는 민감해도 부의 축적(stock)에는 관대한 것이 현재의 시스템이다.
또한 다시 이야기하지만 분배가 실제로 이루어진 것과 분배를 한듯한 느낌은 다른 것이다. 정부나 정권의 자의적 복지가 문제인 것은, 복지를 관의 시혜라고 베푸는 듯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어서다. 정부가 판단하는 사회복지와 저소득층이 절실히 필요하는 것이 따로 노는데, 그 이유는 여기에는 공급자의 경쟁이 개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혜의 감정이 위험한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는 쪽으로 분배가 우선시되고, 사회 전체의 후생을 최대화하는 기능이란 조직의 판단에 의해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통일세 논란도 정부의 능력에 대한 착각과 오만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다.
내가 부자감세와 직접세(소득세/법인세) 인상을 모두 반대하는 이유는, 일단 시스템의 한계상 최종 보스인 축적(stock) 대신 흐름(flow)을 공격하기 마련이고, 정부의 분배 능력 미비는 계급 갈등을 야기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양한 계급 갈등의 해소는 복지정책론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테마다. 이 갈등이 체하게 되면 누구도 원치 않는 파쇼정권이 투표로 버젓이 생겨나기도 한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직접세의 조세저항이 강하다고 아는 이들이 있는데, 오히려 간접세 인상이 여러나라의 경우를 살펴 볼 때 정권 붕괴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그렇게 정권의 목숨을 건 카드를 이렇게 엉뚱한데 쓴 정권이란 연구대상이다.) 소득이 낮을 수록 소득에 대한 간접세 부담율이 높아지기 때문이고, 계층간 시기심을 자극, 대중의 민심을 흔들리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자들의 소득 중 그들이 쓰는 소비의 비율은 작고, 가난할 수록 버는 대로 쓰기에 바쁘다. 실제로 고소득층의 간접세 부담율은 저소득층보다 낮기 마련이고, 이를 간접세의 역진성이라 한다.
그러나 간접세의 역진성보다 걱정스러운 것이 바로 세대간의 역진적 세부담이다. 단일 시점의 소득만을 고려하면 간접세의 역진성이란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 가야 할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 그리고 갈수록 젊은이들의 소득 기회가 줄어 드는 시대다. 평생의 소득을 고려한 공평한 부담은 계산법이 달라진다. 근로 인구 구성이 역피라미드형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 근로소득이 없다고 하여 가난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간접세의 역진성을 어느 한 시점의 소득 수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 주위에는 부자이지만 일도 하지 않으면서 세금도 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사회에서의 간접세의 역진성 여부에 대한 고찰은 재정학의 최근 테마 중 하나이기도 하고, 심지어 누진적이라는 보고도 있다. 사견으로는 상속세 100%라면 죽기 전에 모두 쓸테니 간접세도 완전히 누진적이 될 듯하다. 그렇게 가장 효과적으로 축적을 흐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흐름만 공략 받아도 억울하지 않다.
간접세는 다소 역진적이지만 이로 인해 절약될 수 있는 행정의 사무 처리 비용이 크기에 재미 있는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아예 직접세를 폐지하고 간접세만을 거두어 무언가 해보자는 일도 있었다.
바로 기본소득(Basic Income)이라는 발상.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소득을 일률 지급하는 것이다. 정부가 일체의 판단을 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거두어 지급하기 때문에 행정 비용이 삭감될 수 있는데, 파탄 직전의 사회 보장 제도, 목적 없이 땅을 파고 있는 공공사업이 완전 대체될 수 있는 셈이다. 이 세상에는 안하느니만 못하는 노동도 많다. 사회 자체가 최저한의 생활이 보장해 주기에 기업의 고용 유동성도 당연히 높아져 좀비에 기득권이 점령되는 일도 없어진다. 기본소득이 간접세와 셋트가 되면 상속세 100%가 되기 전에도 누진적이 될 수 있다. 간접세가 오른 만큼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 갈 절실한 기본소득이 오르지만 부자들에게는 새발의 피 같은 수치이기에.
물론 아직은 부의 소득세(負의 所得稅, negative income tax)와 마찬가지로 꿈과 같은 일이라고 치부하는 이들이 더 많음을 안다.
그러나 진보란 더 나은 길이 있다고 믿으며 상식을 의심하는 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를 재분배하면서도 어떻게 부를 창출하는 일을 독려할 것인지, 그리고 이 극단적 대립과 고립의 사회를, 가진자와 아직 갖지 못한 자 모두의 연대를 통해 결속할지 고민하는 힘이다.
모두가 행복하지만 새로운 생각을 해낸 이들과,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난 이들이 조금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
우리가 교과서적인 혹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의한 상식을 이야기할 때 가끔은 스스로 의심하며 떠 올려 봐야할 필연적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사회의 모습이다.
간접세를 늘리겠다는 선언은 일반적인 민주주의체제에서는, 특히 시민들이 불황이라 느끼고 있을 때는, 지지율을 급감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보통은 신중하기 마련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난 일본 민주당의 참의원 선거 참패 원인으로 소비세 인상 논의가 있었음은 좋은 교훈. 조세저항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정말 돈이 필요한 경우에는 가장 효과적으로 세수를 늘릴 수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현 정부가(아니면 대통령 개인이) 용기를 낸 배경이 이제 더 이상 국민의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연하지 않기. 사실 이러한 용기는 기업 CEO에게는 꽤 필요한 자질인데, 문제는 지금 우리는 기업이 아닌 정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데 있다. 기업은 가끔 폭주를 한다. 기업을 이륙시키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러한 목숨을 걸고 뛰어 오르려는 용기에서 온다. 장렬하게 산화할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 것이, 그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것이 바로 주식회사이기 때문이다. 아프겠지만 다시 추스려 또 살아 가면 된다. 그 자리는 다른 기업이 채우고, 또 말도 안되는 폭주라면 벌어지기 전에 시장의 견제가 들어 온다. 그러나 똑같이 사람이 모인 조직이지만 국가와 정부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단 하나의 정부, 임기 동안은 일체의 경쟁이 없는, 또 다른 성격의 조직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조직에 자금을 대기 전에, 우리는 이 조직에 기대하는 바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 조직이 우리들의 세금을 가져 가서 제대로 활용하고 있었는지 냉철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여러 성격의 정권을 거치는 동안 점점 비대해져 왔고, 그 결과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득권이 되어 왔다. 국민이 받는 스트레스 중 굳이 안해도 되는 일을 정부가 벌여서 초래된 일이 적지 않다. 살아 가는 것은 어떻게든 우리끼리 살아 갈 텐데, 왜 이렇게 여러가지 일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인지 때때로 시민은 궁금하다.
지금 당장 과연 그 돈이 정말 필요한지, 통일이란 그렇게 돈을 미리 걷어 둬야 할 만큼 두려운 것인지, 독일처럼 일단 통일이나 되고 걱정하면 안되는지, 이 특정 목적의 적합성에 대한 논의도 해야겠지만, 더욱 더 지금 시급한 것은 지금 이미 거두어 들이고 있는 세금이 '공정하고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지 점검하고 국민 스스로 자발적으로 이해하는데 있다. 내 세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성남시 지불유예 사태 이후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일각에서 통일세를 간접세가 아닌 직접세의 대표격인 법인세와 소득세로 조달하라고 주문하는 것 역시 약간 이해 부족. 정작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법인세가 더 저렴한 해외 법인으로 법인세를 나눠 낼 수 없는 중소기업과 유리지갑 샐러리맨의 소득세다. 새로운 꿈을 꾸려는 법인과 한달 한달 더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피고용인의 소득은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간접세는 금융자산으로 살아 가는 불로소득자도, 세무서는 알 수 없는 어둠의 비즈니스도 어쩔 수 없이 소비한 만큼 내야 하니 투명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오히려 공평하다. 직접세를 늘리자고 하면 재벌과 불로소득층을 때린 듯하여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정작 타격을 입는 이들은 열심히 산 사람들일 수 있는 것, 아이러니지만 이 것 또한 사실인 것이다. 분배는 분배를 위한 확실한 정책목표를 통해 이루어져야지, 분배된 듯한 느낌처럼 위험한 것은 없는 일이다. 간접세의 역진성을 이야기하고픈 마음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무서운 역진성은 막 창업하려는 법인과 이제 사회에 들어간 젊은이의 소득세가 앞으로 더 늘어날 연금생활자와 기득권형 불로소득자를 먹여 살려야 하는 시스템에 있다.
작금의 정부 운영을 볼 때 언젠가 증세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다만 세금의 형태도 시기도 모두 상상 밖이다. 스펙타클 대한민국.
삶에 드리워진 거대한 장애물들.
나름 각자 일차적으로는 장애물을 관찰하거나 도전해 보지만 역시나 혼자서는 무리.
우리는 이에 대해 보통 어떻게 반응할까?
선택지는 두가지.
하나는 자신을 업그레이드하여 늠름하게 뛰어 넘거나, 혹은 장애물의 존재 자체에 의심을 갖고 공격하는 것이다.
만약 지식이라는 것이 사회를 움직이는 코드라면, 지식은 자기계발 아니면 사회개혁의 명령을 끊임없이 내리는 장치였고, 흔히 말하는 리더십 특히 Thought leadership은 이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장애물이란 것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것이기에 이를 폼나게 뛰어 넘어 승리하는 것도 멋진 인생이고, 또 모두를 위해 장애물을 넘어뜨리는 위업을 달성하는 것도 멋진 일이다.
사회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구성원이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온다. 내가 이 시점에서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것인지 사회개혁을 해야 하는 것인지 혼동스럽고 어쩔줄 모르기 때문이다. 어린 청춘일 수록 더하다. 이 것이 쉬운 사회는 차라리 행복하다. 386의 젊음은 터프했지만 따라서 오히려 행복했던 것이다.
그런데 장애물이란 혼자 뛰어 넘기도 힘든 것이기에 , 장애물이 원래 그 곳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임을 인지하고, 이 사실을 공유하고, 연대를 구하는 일은 업그레이드된 존재의 희생을 어느 정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장애물 위에 올라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이가 다시 내려와 공성전을 펼쳐야 하는 일이기에.
세계최고의 자살율에, 청년 체감 실업률 23%. 혼미하는 정국. 장애물을 뛰어 넘을 패기를 잃은 이들은 무한 업그레이드에 지쳐 쓰러져 가고, 장애물을 무너뜨릴 힘을 지닌 이들은 화석처럼 굳어 자신이 업그레이드된 장애물이 되어 가고 있다.
지식인이라면, 어른이라면, 스트레스를 느껴야 한다. 이 둘 중 오늘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지에 대해.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괴로움에 대해.
최근 페이스북의 성장세가 체감 가능하기 때문에 “~한마디” 시리즈를 업데이트.
더불어 Topsy에 의한 RT 관찰 기능만큼이나 유용할지 모르는 페이스북의 Like(좋아요) 기능 삽입법을 더불어 기록해 둔다. .
페이스북에 한마디 버튼 추가법은… 기존의 한마디 시리즈에 마지막을 줄을 다음과 같이 추가. (각자의 URL은 각자 바꿀 것.)
<a href="http://me2day.net/posts/new?new_post[body]="":http://goodhyun.com" ><img src="http://cfile26.uf.tistory.com/image/19042C144B055621817910" alt="미투데이로 한마디" border="0"/></a> <a href="http://twitter.com/home?status= http://goodhyun.com"><img src="http://cfile25.uf.tistory.com/image/20042C144B05562182A0CD" alt="트위터로 한마디" border="0"/></a> <a href="http://www.facebook.com/share.php?u=http://goodhyun.com"><img src="http://cfile9.uf.tistory.com/image/157F42334C601F3082E076" alt="페이스북에 한마디" border="0"/></a>
아이콘은 몇벌 만들었으니 URL copy하여 취향대로 사용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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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좋아요) 버튼 삽입법은
http://developers.facebook.com/docs/reference/plugins/like 참조. 유의점은 XFBML 사용시 JS로딩을 HTML최하단에 삽입하고, 아래를 꼭 삽입할 것. 일부 브라우저는 체크를 엄격하게 하기에 나타나지 않는다. iframe은 비교적 쉽겠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html xmlns="http://www.w3.org/1999/xhtml" xmlns:fb="http://www.facebook.com/2008/fbml">
RSS Feed에 Share on Facebook 링크 추가법은 Feedburner의 Feedflare 중에
이미 있으므로 추가만 하면 아래와 같이 3종셋트 완성.
PS. 이상 코드 삽입에 쓴 것은 Code Formatter Plugin for Windows Live Writer
“~에 한마디 시리즈”가 늘어날 수록, 소셜네트워크가 더 복잡해질 수록, 컨텐츠의 하단부는 코크핏의 대시보드처럼 되어 버릴 것 같은 느낌… 인데, 사람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을 것. SNS의 포화점을 알아보는 좋은 잣대일지도.
자기계발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분들도 계신데, 때로는 손해. 자기계발서를 읽는다는 것이 자신을 산업사회의 요구에 맞추어 계발한다는 불편함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 자기계발서에는 한 개인이 어떻게 희망을 보게 되는지에 대한 논리가 숨어 있기 때문에 이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관찰의 가치가 있다.
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그녀의 그 ‘논리’는 목차와는 무관하게 내게는 3가지로 기억되고 있다.
불확실성에 대한 무딤, 허락받지 않는 패기, 삶에 대한 집요함.
이 논리만으로도 사실 문학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것들. 스무살의 청춘보다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책 제목 참 미묘하다. 요즈음 내 여가의 관심사는 청년들에 대한 문제인데, 그 문제의 기원은 의외로 우리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차갑게 보면 그녀에게는 뭐든지 네고해낼 수 있는 내재된 파워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그렇게 뭐든지 세상과 네고해 낼 수 있다는 그 희망을 모두가 어떻게든 잠시나마 가질 수 있다 믿을 수 있는지, 그러한 희망의 논리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지,… 적어도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목격한 그 희망의 논리를 이야기하는 기득권이었던 것이다.
낭만IT적으로는 한때를 풍미한 Diamond multimedia 창업자 이종문회장의 언급을 읽을 수 있어서 잠시나마 여러 생각에 빠지게 된 점이 플러스.




